도금공장이 3D업종? 우린 화학약품 안만져요 - 이오선(가운데 옥색 상의를 입은 여성) 동아플레이팅 대표와 직원들이 공장에 모여 활짝 웃고 있다. 도금 업종은 ‘3D 업종’이란 인식 때문에 청년층이 입사를 꺼리지만, 이 회사는 직원 평균 연령이 32세다. 전 공정을 스마트화하면서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부산=오종찬 기자

부산 녹산공단의 도금(표면 처리) 업체 동아플레이팅의 이오선(62) 대표는 원래 잘나가던 보험사 영업소장이었다. 그의 VIP 고객이던 도금 업체의 미납 보험료를 한두 번 내주다가 10억원 넘게 어음을 받으면서 덜컥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

지난달 22일 만난 이 대표는 “치마 정장에 또각또각 구두만 신던 30대 보험사 영업소장이 공장 바닥에 화학약품 폐수가 철벅철벅 밟히는 도금회사 사장이 된 사연”이라며 웃었다. 도금이 뭔지도 몰라 그저 ‘회사를 정리해 몇 푼이라도 건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의 승부수는 ‘디지털 전환’이었다. 201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회사를 스마트 공장으로 바꾸고 전 공정을 자동화했다. 라인별 가동 현황을 사무실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설치했다. 동아플레이팅은 현대차, BMW, 폴크스바겐, 볼보 등 전 세계 80여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는 강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직원 35명의 평균 연령은 32세다.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소문에 청년들이 제 발로 입사한 덕분이다. 국내 도금 업계에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 스마트 공장 기술을 전수해준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11월 직접 방문해 살펴보고 갔을 정도다. 이 대표는 “5성급 호텔 같은 도금 공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5성급 호텔’ 목표인 도금 업체

현장에서 혁신을 이끌며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는 중소·중견기업 CEO들의 공통점은 “기존 방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엔 숙명 같은 인력난, 원자재비 부담, 경기 사이클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LA, NY 같은 미 메이저리그 야구(MLB) 로고를 박은 의류와 모자, 신발로 한국을 넘어 중국 시장을 휩쓴 중견 패션 기업 F&F의 김창수(62) 회장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에 팔던 패션 업계의 관행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는 해외 스포츠 IP(지식재산권)를 사들이는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했다. 2020년 중국에 진출해 큰 인기를 끌면서 작년 해외 매출 1조2000억원을 돌파했고, 패션 업계에선 이례적인 30% 안팎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삼성출판사 김봉규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그의 조카는 ‘아기상어’로 유명한 김민석 더핑크퐁컴퍼니 대표다. 3대(代)에 걸쳐 출판업을 다양한 방식의 IP 콘텐츠 기업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뾰족한 기술

경기도 시흥의 탑드릴, 부산의 명세CMK는 각각 굴착기용 부품, 병원용 배식 카트라는 틈새시장을 탄탄한 기술력으로 뚫어 세계 수십 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탑드릴은 땅에 구멍을 뚫을 때 발생하는 소음을 75데시벨(dB) 이하로 줄여주는 굴착기 부품을 생산한다. 도심에서 공사해도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력으로, 홍콩·캐나다·일본 등 50여 국에 수출한다. 명세CMK의 김종섭(64) 대표는 기계공학도 출신이다. 그는 “지인 병문안을 갔다가 식사가 다 식어 환자가 화내는 걸 보고 배식 카트 개발에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4년 반 숱한 시행착오 끝에 2000년 첫 제품을 내놨다. 국내 최초, 세계 두 번째였다. 수십 명분 식사를 동시에 냉장·보온할 수 있고 카트에 전후방 카메라, 초음파 센서까지 장착해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국내 병원 500여 곳에 카트 7500대 이상을 공급했다.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23국에 수출 중이다. 김 대표는 “단순한 배식 카트가 아닌 자율주행 로봇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부산=박순찬 기자, 송혜진·이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