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에는 과감한 혁신을 이끌어가는 ‘2세·3세 경영자’도 많다. 가업 상속의 높은 벽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직장을 버리고 중소기업에 뛰어든 이들이다.

엔진 부품 제조사 삼영기계 ‘2세 CEO’인 한국현(48) 사장은 카이스트 인공지능 박사,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주재원 출신이다. 그는 2013년 실리콘밸리 근무를 끝으로 사표를 내고 부친 회사에 합류했다. 한 사장은 “1975년 창업한 아버지의 꿈이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인데, 카이스트와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첨단 기술로 중소기업의 고질적 인력 문제를 풀고 있다. 엔진 부품을 주조하려면 수작업으로 수많은 거푸집을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데, 인력난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 그는 모래를 이용한 3D 프린팅(프린터로 입체 모형을 만드는 것) 기술을 바탕으로, 금형 작업 없이 수십 개의 거푸집을 일괄 제작하는 방식을 도입해 수작업을 80%까지 줄였다. 한 사장은 “난제를 하나씩 해결했을 때의 가치와 보람은 다른 어떤 일에서 얻는 것보다도 더 크다”고 했다.

한방유비스 최두찬(47) 대표는 미 유학파 출신의 ‘3세 CEO’다. 한방유비스는 1947년 ‘조선소방기재’란 이름으로 시작한 국내 최초 소방 전문기업이다. 롯데월드타워, 인천국제공항, 여의도 파크원 같은 국내 랜드마크 빌딩의 소방 설계·감리를 맡을 만큼 탄탄한 기술력을 갖췄다. 최 대표는 “한국에 소방공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미국행을 택했다”며 “현지 업체에서 일하며 UAE의 초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의 소방 설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2017년 대표에 취임한 그는 인공지능(AI) 소방 시설 설계 연구 등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100년 기업’을 향해 가고 있다.

문구·교구 제조업체 빅드림의 여상훈(38) 경영혁신실장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다니던 안정적 삶을 포기하고, 지난 2015년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다. 문구를 값싸게 사들여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유통사였지만, 그는 2020년 ‘티처스’란 과학 교구(敎具) 브랜드를 출시하며 사업 방향을 틀었다. 시장의 호응을 얻으며 2014년 매출 13억원, 직원 3명이던 빅드림은 작년 말 기준 매출 63억원, 직원 23명으로 성장했다. 그는 “가업은 부모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2세가 주도적으로 이어받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