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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4년간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외모는 영락없이 한국인이지만, 사고방식은 현지 사람들과 비슷해 어떤 경계선에 놓인 듯한 한국계 입양인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감정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한국을 그리워하거나 한국인에 호의적인 이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 대해서라면 반감이 큰 사람도 있습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사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마크롱 책상에 놓인 책, 한국계 입양아 교수가 저자

한국계 입양아인 프랑스 로렌대 심리학과의 뱅상 베르테 교수(한국명 이경순).

지난 연말 인스타그램에서 눈이 번쩍할만큼 재미있는 사진을 한장 발견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함께 사용하는 엘리제궁의 집무실 책상 사진이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알고리즘 관련 책이 놓여 있었는데요. 그 책의 저자는 프랑스 로렌대 심리학과 뱅상 베르테 교수이고, 뱅상은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1년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에 입양된 사람입니다.

엘리제궁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영부인 브리지트 여사가 함께 쓰는 집무실 책상에 놓인 뱅상 베르테 교수의 저서 '새로운 오라클'./트위터

뱅상은 유럽의 심리학계에서 돋보이는 신진 학자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지 심리학자인 뱅상의 연구 분야는 AI(인공지능), 뇌 인지, 의사 결정, 편향적 인지 등인데요. 심리학을 대중의 관점에서 쓴 책을 여러권 내놓았습니다. 프랑스 방송·라디오 등에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그가 2018년 쓴 ‘l’erreur est humaine’(프랑스 속담으로서 사람이라 실수를 저지른다는 뜻)라는 책은 학계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람이 행동이나 생각이 합리적이지 않는 이유를 실생활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유럽의 심리학계뿐 아니라 출판계에서도 호평을 받은 뱅상 베르테 교수의 2018년 저서.

뱅상이 쓴 책이 엘리제궁의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는 건 뭔가 사연이 있을 듯 했습니다. 뱅상에게 왓츠앱 메신저로 물어보니 과정을 설명해줬습니다.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시피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는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뱅상은 2021년 가을 ‘새로운 오라클(Les nouveaux Oracles)’이라는 책을 레오 안셀렘이라는 프랑스중앙은행 간부와 둘이서 썼는데, 레오의 고등학생 시절 은사가 브리지트 여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브리지트 여사가 옛 제자가 썼다는 책을 구해서 엘리제궁에서 남편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쓰는 집무실 책상에 두고 읽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는지 여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그의 집무실 책상에 올랐다는 건 분명합니다.

뱅상 베르테(오른쪽)와 '새로운 오라클' 공저자 레오 안셀렘/트위터

‘새로운 오라클’은 알고리즘으로 범죄를 예측하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학자로서 자신이 쓴 책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오른다는 건 드문 영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982년 충북 보은 출생, 친부모 찾는다

그러면 뱅상을 조금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입양 기록을 아직 갖고 있지만 아직도 생부나 생모를 찾지 못했습니다. 1982년 9월 11일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듬해인 1983년 8월 주민등록상 주소인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에서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이 됐습니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이경순이었구요. 아버님 이름은 이현옥이고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뱅상은 상당한 늦둥이였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태어난 늦둥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입양을 보낸 것 같다고 뱅상은 추정합니다. 관련 서류를 보면 입양을 보낸 1983년에 아버지는 52세, 어머니는 48세이고요. 3명의 형이 있었는데 각자 23세, 21세, 17세였다고 합니다. ‘한국 남자 아기 이경순’을 입양한 사람은 프랑스 낭시에 사는 자크 베르테씨였습니다.

뱅상 베르테 교수와 2020년 말 파리 중심부 카페에서 만났을 때 모습./파리=손진석 기자

◇생부 살아 있다면 90대, 형들이라도 만나고 싶다

그는 낭시2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인지과학 및 언어심리학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한 다음 2012년 로렌대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동시에 소르본대 경제연구센터 연구원으로도 쭉 활동하고 있습니다.

뱅상은 가족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는 서울을 방문하려다가 코로나 사태 탓에 막혔는데요. 올해는 서울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뱅상은 “생부가 살아 계신다면 90세가 넘었을 것 같다”면서 “형들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뱅상 베르테 교수의 입양 당시 기록 문서/뱅상 베르테 제공

뱅상은 아직 미혼입니다. 그는 한번은 “한국 여성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프랑스 여성들과는 사귀어봤는데, 정서적으로 뭔가 미묘하게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입양아들은 이성과의 만남도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9살 때 한글로 쓴 쪽지 읽지 못하게 된 정성수

저는 파리에서 일하던 시절 입양아의 안타까운 사연을 기사화해서 친모를 찾도록 도와준 적 있습니다. 1978년생인 마티아스 푸코(한국명 정성수)의 사연입니다.

한국의 한 고아원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생 정성수는 1986년 6월 11일 파리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이 결정된 직후였습니다. 한 승무원이 ‘뭐라도 적어 보라’며 건네준 쪽지에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시 한국에 오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정성수는 프랑스인 양부모로부터 마티아스 푸코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프랑스어를 익히면서 한국어는 숫자와 단어 몇 개 빼고 모두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프랑스 중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지방 소도시라서 동양인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말은 쉽게 잊어버렸죠. 프랑스어를 빨리 배우려 애쓰는 과정에서 한국말을 안 쓰다 보니 금세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비행기에서 쓴 쪽지는 30년이 넘도록 고이 보관해왔다고 합니다.

프랑스로 입양된 마티아스 푸코(한국명 정성수)가 1986년 파리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쓴 메모./마티아스 푸코 제공

◇1986년 광덕국민학교 2학년 12반이었던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프랑스 중부 도시 디종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랑그르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2018년 디종한글학교의 노선주 교장을 알게 됐습니다. 마티아스는 노 교장에게 오랜 세월 보관해온 한글로 쓴 쪽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쪽지를 본 노 교장은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마티아스는 “쪽지 내용을 번역해 전해들은 순간 말로 표현 못할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는 걸 느껴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마티아스는 물리치료 전문 간호사로 일하며 14살 아들 에반과 둘이 삽니다. 프랑스인 아내와는 8년전에 헤어졌습니다. 마티아스는 고아원에서 지내다 입양됐다는 것만 기억할 뿐 가족의 이름이나 살던 곳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마티아스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 버려졌어요. 가난을 못 이겼던 걸로 알아요. 할머니가 고아원에 보냈다가 어머니가 집으로 데려왔는데, 어머니가 다시 고아원에 맡긴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여동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티아스 푸코(한국명 정성수).

마티아스가 갖고 있는 쪽지를 보면 그가 1986년에 ‘광덕국민학교 2학년 12반 15번’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광덕초등학교는 전국에 광명, 안산, 안성, 천안, 화천 등 5곳에 있습니다. 마티아스는 “프랑스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인종차별을 느껴서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한국말을 금세 잊었다”며 “부모와 형, 여동생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프랑스인으로 살아왔지만 항상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생모는 찾았지만 만남에는 실패

2018년 8월 마티아스의 사연을 서울에 기사로 보내놓고 차를 몰고 휴가를 갔습니다. 알자스 지방의 한 향토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음식이 짜다고 툴툴거리고 있을 때 디종한글학교의 노선주 교장으로부터 들뜬 목소리의 전화가 왔습니다. “마티아스가 생모를 찾은 것 같아요.”

조선일보에 보도된 마티아스의 사연이 알려져 그의 생모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입양을 보냈다는 취지의 편지를 마티아스에게 보내왔습니다. 너무 보고 싶고 너무 미안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티아스의 생모는 그때쯤 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마티아스를 흔쾌히 만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 했습니다. 마티아스도 프랑스에서 형편이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생모를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마티아스와 그가 간직해온 쪽지의 사연을 보도한 조선일보 2018년 8월 10일자 기사.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심리학 교수인 뱅상이 마티아스와 어릴 적 만난 적 있다는 겁니다. 제가 뱅상을 만났을 때 마티아스가 생모를 찾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을 보여줬더니 기억한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에 한국인 입양아를 둔 프랑스인들끼리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만났었다는 거죠. 적응을 돕기 위해 비슷하게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끼리 만남을 가지도록 프랑스인 부모들이 배려를 한 것입니다.

마티아스의 아들 에반은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스웨덴 입양아 마티아스는 인프라 및 교통 담당 차관에 올라

저는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또다른 한국계 입양아를 만난 적 있습니다. 파리에서 만나긴 했지만 스웨덴 국적인 마티아스(한국명 이영준)였죠. 저는 2018년말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교통포럼(ITF)의 김영태 사무총장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티아스 란드그렌이라는 스웨덴 인프라 및 교통 담당 차관이 한국계 입양아인데, 사람이 쾌활하고 스웨덴에서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파리에 출장을 종종 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마티아스 영준 란드그렌 전 스웨덴 주택부장관/파리=손진석 기자

마침 2019년 2월 OECD 출장 차 파리에 온 마티아스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주프랑스스웨덴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파리의 스웨덴대사관은 로댕박물관 옆에 있고, 내부는 미술관처럼 아름답게 마감이 돼 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제가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사관 앞마당에 SUV 한 대가 들어오더니 건장한 체구의 동양계 남성이 내렸습니다. 마티아스는 화통하게 웃으며 영어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란드그렌 차관입니다. 겉으로는 스웨덴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몰라요.”

생후 3개월에 스웨덴으로 입양된 마티아스는 명문 웁살라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민주당 당원으로서 노동단체를 위해 활동하는 노동 분야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2014년 사회민주당의 스테판 뢰벤 전 총리의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2016년 인프라 및 교통 담당 차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이후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스웨덴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습니다.

2019년 2월 파리의 주프랑스스웨덴대사관 에서 만난 마티아스 영준 란드그렌 전 스웨덴 주택부 장관(왼쪽)과 본지 손진석 기자.

◇스웨덴 양부모가 이름에 ‘영준’ 넣어줘

마티아스는 입양 후 어린 시절 스웨덴 서남부 덴마크 접경지대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스웨덴인 아버지는 인쇄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약사였습니다. 마티아스는 “초·중·고 시절 학교에서 사진을 찍으면 나 혼자만 백인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마티아스는 “정체성 고민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이 차별이 적은 나라라는 점에서 행운아였다”며 “운동을 열심히 했고 공부도 제법 하면서 내 길을 찾아나갔다”고 했습니다.

마티아스는 “생부가 돌아가시고 생모는 키우기 어려워 입양을 보내신 것으로만 알고 있고 한국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며 “이영준이라는 한국 이름이 붙여진 채로 스웨덴에 왔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웨덴인 부모가 그의 중간 이름에 ‘영준(Young zun)’을 넣어준 덕분에 주민등록상 정식 이름이 ‘라르스 마티아스 영준 란드그렌’으로 여느 스웨덴 사람보다 깁니다.

마티아스는 한국말은 한마디도 할 줄 모릅니다. 영준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도 버거워했습니다.

2017년 EU 회의에 참석했을 때 마티아스 영준 란드그렌./EU


◇제주도 와서 소맥 폭탄주 맛 알게 돼

마티아스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건 2018년 5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 교통안전 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릴 뿐 아니라 천혜의 자연환경까지 물려받은 나라라는 걸 실감했다”면서 “태어난 나라에 처음 왔다는 건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고 했습니다.

마티아스는 “제주도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식 폭탄주를 배웠다”며 “술을 섞는지 의아했는데 마셔보니 시원하더라”며 웃었습니다. 그는 제가 인터뷰를 할 때 파리 출장을 와서도 국제교통포럼(ITF)의 김영태 사무총장과 함께 한식당에서 생선회를 즐겼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국토교통부 관료 출신입니다.

마티아스는 제가 향후 계획을 묻자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권에 들어온 이상 특정한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폭넓게 진로를 탐색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5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인프라 및 교통 담당 차관이라는 직책도 충분히 보람되고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2018년 5월 독일에서 마티아스 영준 란드그렌 당시 스웨덴 인프라 및 교통 담당 차관(왼쪽 서 있는 사람)과 OECD 산하 국제교통포럼(ITF)의 김영태 사무총장(가운데)/OECD

◇주택부 장관 지내고 민간으로 돌아가

그는 2020년 민간 기업으로 갔다가 2021년 주택부 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했습니다. 그랬다가 작년 9월 스웨덴이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마티아스는 다시 민간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다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면 내각에서 큰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티아스의 아내는 전형적인 스웨덴인이고 교육부 공무원입니다. 그리고 17세, 14세인 두 아들을 뒀습니다. 마티아스는 “한국의 가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면서 “다만 두 아들이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를 궁금해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휴가를 갈 생각은 있다”고 했습니다.

이상으로 유럽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현지에서 만나거나 취재한 한국계 입양아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해드렸습니다. 입양아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 어릴 적 입양됐거나 망각했기 때문이죠. 일부는 현지어를 빨리 배우려고 스스로 한국말을 잊어버리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 맞고 한국 이름도 갖고 있는 사람인데, 영어나 불어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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