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만 타이난의 남부 과학단지 내 증설 중인 TSMC 공장의 모습. TSMC는 최첨단 공정인 3나노 반도체 양산을 위해 3개 공장을 신설 중이다. /타이난=이벌찬 특파원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반도체 벨트’ 같았다. 실제로 TSMC는 대만 남북 260㎞를 연결하는 4곳의 핵심 과학단지(룽탄·신주·중부·남부과학단지)에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을 다루는 대규모 반도체 생산 기지를 조성했다. TSMC는 올해 룽탄 과학단지에 1나노 공장, 신주·중부 과학단지에 2나노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작년부터 올 연말까지 착공하는 TSMC 초미세 공정 라인만 11곳에 달한다. 동시에 인근 부지에 생산뿐 아니라 포장·검사 공장을 증설하는 식으로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TSMC 홍보 담당인 베이커 리씨는 “파운드리 수요가 앞으로도 급등하는 만큼,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22년 12월 29일 대만 타이난의 남부 과학단지에서 열린 TSMC 3나노 파운드리 양산 기념식에서 공개된 파운드리 공장 모델 모습. /로이터

◇미래 공정 ‘1나노’… 기술 개발과 동시에 공장 건립

지난 14일 찾은 대만 북부 룽탄(龍潭) 과학단지는 TSMC가 올해 1나노 공장 건립을 추진하는 지역이다. 1나노 기술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개발 시기를 예상해 공장 설립부터 밀어붙이는 것이다. 내년 부지를 최종 확정해 환경 평가·토지 수용을 거쳐 2026년 착공, 2027년 시범 생산, 2028년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1나노는 기술 난도가 높고 수율 관리가 어려워 ‘마의 벽’으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2027년 1.4나노 공정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TSMC의 1나노 공장 예상 부지는 단지 서쪽 메이룽루·융광루·성팅루바다오 3개 도로가 에워싼 지역으로, 기존 패키징(반도체 포장) 공장 부지보다 훨씬 넓었다. 단지 관계자는 “기존 단지에 남은 부지가 없자 대만 정부가 새 부지를 매입해 TSMC에 배정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장 규모는 50만㎡ 이상이고, 생산 라인은 최소 5개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의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1나노 공장은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대만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금융센터(타이베이101)를 짓는 수준의 고가 자재들이 대거 들어갈 것”이라며 “고강도 콘크리트를 비롯해 초고층 빌딩 수준의 내진 규격을 갖춘다”고 했다.

지난 14일 대만 북부 룽탄(龍潭) 과학단지의 TSMC 패키징 3공장. 이 공장 인근 부지에 TSMC의 1나노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타오위안=이벌찬 특파원

◇TSMC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

TSMC는 대만 전역에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새로운 스타 기업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세계 3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성장한 미디어텍이 대표적인 성과다. 17일 찾은 대만 신주 과학단지의 미디어텍 본사 정문에는 ‘토끼 해에는 세계적으로 빛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수년 전만 해도 저가 AP(스마트폰의 두뇌 역할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이었던 미디어텍이 세계 시장에서 첨단 기술로 주목받는 팹리스로 성장했음을 자축한 것이다. 미디어텍 홍보 담당인 사브리나 우는 “TSMC가 대만에 조성한 반도체 생태계가 빠른 성장의 발판이었다”며 “설계도만 주면 저렴한 가격에 빠른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타이난 TSMC 18공장의 업무동으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만의 팹리스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곧바로 TSMC의 파일럿(시범) 공장에 가서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며 “스피드가 생명인 반도체 업계에서 이런 생태계는 독보적인 경쟁력”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TSMC 또한 대만 팹리스의 급속 성장을 등에 업고 빠르게 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TSMC의 생산 기지가 포진한 4개 과학단지는 하나로 연결된 벨트이자, 각각 특수 목적으로 움직인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는 연구·개발과 최첨단 5·7나노 반도체 생산에 주력한다. 오는 2분기(4~6월)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위한 R&D 센터를 건설하고, 8000여 명의 인력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반도체 포장·검사 등 후공정 공장뿐이었던 북부 룽탄은 1나노 공장 신설을 추진하며 미래 반도체 기술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 중부·남부 과학단지에선 3·5나노 등 현재 수요가 가장 많은 첨단 칩 대량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