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성 재테크 유튜버 A씨는 구독자들을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 가입시키고 거래소 측으로부터 ‘추천인 수수료’를 가상 화폐로 받았지만,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외 거래소에서 받은 가상 화폐는 국세청 감시에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금으로 들어온 다른 방송 수입과 시청자 후원금 등도 친척 등의 계좌를 이용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A씨의 소득세 탈루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최근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9일 “대중적 인기와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고수익을 누리면서 납세 의무를 다하지 않는 유튜버, 인플루언서, 웹툰 작가, 프로 게이머 등 84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존 사업체와 달리 유튜브, 온라인 게임, 웹툰, 가상 화폐 등과 관련된 탈세 의혹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 대상 중 유튜버·인플루언서 26명을 ‘SNS 리치(부자)’라고 표현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의류 판매, 동영상 강의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오호선 국장은 “세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련 산업 생태계의 경쟁 질서도 저해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SNS 리치’ 26명 조사받는다

30대 여성 인플루언서 B씨는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옷값을 계좌로 받고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법인카드로 명품 가방과 의류를 샀고 피부 관리도 받았다. 초등학생인 아들·딸 학원비와 가족 해외여행 비용, 심지어 서울의 고급 빌라 월세도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홈페이지나 유튜브 등을 통해 주식·코인·부동산 등 투자 정보 플랫폼 사업을 하는 19명도 소득 탈루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C씨는 온라인 투자정보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며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재테크 강의를 하고 있다. 주식 가격이 크게 오른 2020~2021년 벌이가 커지자 홈페이지 동영상 강의 판매 수입을 차명 계좌나 가상 자산으로 받았다. 또 직원들 이름으로 10여 개의 경영컨설팅 업체를 차려 실제로는 쓰지 않은 외주 용역비를 쓴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비용을 부풀려 법인세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또 초등학생 아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법인에 유튜브 채널과 유료 가입자를 무상으로 이전했고, 아들은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해외 상금 신고 안한 게이머

배우·가수·운동선수·게이머·웹툰 작가 등 개인 사업자 18명도 조사 대상이다. 방송작가 출신 연예인 D씨는 가족 명의로 1인 기획사를 설립해 수입을 자신과 법인으로 분산시켰다.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로 일하지 않은 친척을 직원으로 올려 인건비를 부풀렸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상적인 겸업이 아니라 탈세 목적으로 가족 법인을 세웠다면 위법”이라고 했다. 해외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신고하지 않은 게이머, 가족에게 가짜 인건비를 지급한 프로 골퍼·야구선수도 있다.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은 30대 여성 웹툰 작가 E씨는 회삿돈으로 빌린 페라리 등 수퍼카 여러 대와 법인카드로 사들인 명품 가방을 소셜미디어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가짜 전세 얻고 법인세 탈루한 용역업체

경기‧인천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중견 건설사 대표 F씨는 건설 자재 80%를 30대 아들이 대표인 회사에 몰아주면서, 통상적인 시가의 2배 수준의 가격을 쳐줬다. 충청권의 건물 안전관리 용엽업체 대표 G씨는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직원·주주 명의의 수도권 소재 아파트들을 사업 목적으로 빌린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전세보증금을 실제 시세보다 크게 높여 임대인인 직원·주주에게 지급했다. 법인세 공제 대상이 되는 비용을 부풀리고, 비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국세청은 의심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사 등 이른바 ‘토착 기업’ 대표 21명도 국세청 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세무조사를 1만3600건 정도로 작년(1만4000건)보다 줄이기로 했다. 세무조사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소다. 하지만 국민, 기업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른바 ‘불공정 탈세’에 대해서는 감시와 조사 수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예인, 운동선수, 웹툰 작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신종·지역 토착 사업자 세무조사 착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