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나 미술품 등에 대한 조각 투자처럼) 최근 등장한 비정형적인 증권을 소액 발행하는 경우에는 기존처럼 증권사를 통해 중앙집중적으로 전자등록·관리되는 전자 증권 형태가 부적합해 새로운 발행 형태가 필요하다.”

지난 6일 금융위원회는 ‘토큰 증권(ST·Security Token)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토큰 증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토큰 증권이 도입되면 미술품, 부동산, 음악 저작권 등 기존에는 잘게 쪼개서 거래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증권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뭐든 조각 내서 팝니다’?

토큰 증권은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화된 증권이다. 기존의 전자 증권은 증권사 중앙 서버에 모든 데이터가 기록·관리되는 반면 토큰 증권은 거래 장부(원장)를 참여자들이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배경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같지만 실물 자산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에서 토큰 증권을 허용하는 한편, 앞으로 자본시장법에 따라 증권 규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현행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제도에는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활용한 비정형적인 증권(예컨대 토큰 증권)에 대한 규율이 없다. 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부동산, 미술품 등 조각 투자를 제도권 안으로 넣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토큰 증권이 조각 투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토큰 증권이 도입되면 대부분의 조각 투자는 토큰 증권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특히 조각 투자 형태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상당수가 증권형 토큰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NFT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권사들 “수혜자는 나야 나”

증권업계는 ‘토큰 증권 발행·유통’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미술품, 귀금속 등 유형자산, 음악 저작권 등 무형자산까지 조각 투자가 가능해지면 중개할 상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금융서비스 플랫폼 기업인 피노아는 2027년까지 증권형 토큰 시장의 시가총액이 24조달러(약 2경95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주요 증권사는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다. KB증권은 지난해 11월부터 SK C&C와 토큰 증권 거래 플랫폼 구축을 준비해 올해 상반기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신한증권은 에이판다파트너스와 함께 제안한 블록체인 기반 금전채권 신탁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이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혁신 서비스로 지정됐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신탁수익증권 방식의 토큰증권 서비스 제공을 위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개인 고객 수가 업계 1위인 키움증권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각 투자는 상대적으로 기관보다 개인들이 많이 이용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은 뮤직카우, 비브릭, 펀블, 카사, 테사 등 총 8개 기업과 협업해 증권형 토큰 유통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SK증권, NH투자증권, 대신증권, 하나증권, 교보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조각 투자 플랫폼 기업과 손을 잡거나 인수를 추진 중이다.

◇“국내 STO 잠재력 무궁무진”

전문가들은 투자자산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STO(Security Token Offering·토큰 증권 상장)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STO를 통해 일부 가상자산을 가장 먼저 제도권에 편입한 미국의 경우 토큰 증권을 신생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승인했다.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인 블록스택은 지난 2019년 STO를 통해 2800만달러(약 358억8200억원)를 조달하기도 했다.

국내 토큰 증권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단순히 부동산만 놓고 보더라도 2022년 기준 한국 부동산 공시지가 총 합계는 7155조원이고 국내 미술시장 거래 규모는 1조400억원까지 성장했다”며 “개인거래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한국 주식시장 규모가 2400조원임을 감안하면 국내에 수치화 시킬 수 있는 자산의 종류와 규모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토큰 증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 실물자산이 없는 가상화폐와 달리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유·무형의 실물 자산과 연계돼 있다. 토큰 증권을 발행·유통하는 것을 STO(Security Token Offering) 사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