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한전과 자회사들이 올해 한전공대에 1588억원을 투입할 예정인 가운데, 감사원은 최근 한전공대 설립 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한전공대 전경./연합뉴스

한전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소 사업을 하는 등 내부 비리가 상당해 감사원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한전이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에 맞춰 졸속 개교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에 3000억원 넘는 돈을 출연하는 등 적자 개선을 위한 자구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실기(失期) 탓이 크지만, 국민들의 전기료 상승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잇속을 차려온 한전의 방만 경영과 윤리 의식 부재도 한몫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직원 가족 태양광 투자 조사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한전 직원을 대상으로 불법 태양광 사업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조만간 감사 결과를 낼 예정이다. 감사원이 2018년에 이어 또 감사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한전 내부 비리가 만연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태양광 발전은 문재인 정부가 집중 육성한 신재생에너지 분야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그런데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한전 전력 계통에 연계돼야 사고팔 수 있고, 지역별로 연계 기능 용량에도 제한이 있다. 이에 연계 가능한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업계에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데, 한전 임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먼저 알고 가족 이름으로 업체를 만들어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한전 임직원은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자기 사업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차명 사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감사 당국은 건강보험 정보 등을 활용해 한전 직원들의 가족과 태양광 사업자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는 식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전이 퇴직자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태양광 사업 혜택을 준 사례도 있는지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전 직원들이 원가 절감 요인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모자랄 판에, 차명으로 개인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전공대에 지금껏 3312억원 지원

지난해 3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한전과 자회사들은 올해 한전공대에 1588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건물 신축이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되기 때문에 내년에도 비슷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운영자금이 없어 회사채를 발행해 매달 수조원을 조달하는 한전이 부담하는 돈만 올해 1016억원에 이른다. 한전과 자회사가 지원 첫해인 2020년부터 올해까지 한전공대에 낸 금액은 총 3312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전공대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나주에 개교한 여파로 교수 연봉이 평균 2억원에 달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기숙사 등을 제공하다 보니 부대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특별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이런 고비용 구조는 해소되기 어렵다.

방만한 경영으로 새나가는 돈도 적지 않다. 한전이 2017~2021년 5년간 내부 감사와 감사원을 비롯한 외부 감사에서 낭비했다고 확인된 돈은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전기요금 장기 체납을 내버려두거나 할인 항목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요금을 덜 받는 경우도 많았다. 공사비를 잘못 뽑거나 재고와 단가를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아 낭비하는 경우도 다수 적발됐다.

◇”한전의 고통 분담부터”

정부·여당은 2분기 전기·가스 요금을 일부 인상하되, 적자 상태인 한전·가스공사에 대한 고강도 개혁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가스공사의 적자를 국민 돈으로만 메우는 것이 아니라, 자구책도 병행해야만 국민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국민들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뼈와 살을 깎는 구조조정안이 나와야 한다”며 “고통 분담 없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당정은 한전·가스공사의 ‘임금 동결’ ‘성과급 반납’ 등 개혁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전·가스공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 관련, “우선 민생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고, 한전이나 가스공사가 할 수 있는 구조 조정 노력 등도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한전공대의 방만 운영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원내 대책 회의에서 “한전과 한전공대의 도덕적 해이가 임계치를 넘어섰다”며 “개교 초기 진행 상황에 대한 한전의 감사에서 교직원 범죄 행각, 도덕적 해이를 적발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한 사실이 발견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