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23일 오전 국세청에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뉴스1

수억원의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에 고액 체납자로 등록된 A씨는 최근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됐다. 그러나 수십억원의 당첨금 대부분을 가족 계좌로 이체한 뒤 체납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A씨처럼 가족·친인척 등의 명의를 이용해 재산을 숨겨놓고 호화 생활을 영위하는 세금 체납자 557명에 대해 재산 추적 조사를 실시, 체납 세금 103억원을 추징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은 총 3778억원에 달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A씨는 납세자의 세금 체납 같은 개인 정보를 국세청이 금융기관과 공유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세기본법을 악용했다. 국세청은 은행이 복권 당첨금에 대한 소득세를 원천징수해 A씨 명의로 납부하자마자 체납 세금 추징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A씨는 당첨금 대부분을 가족 명의 계좌로 돌려놨고 일부는 현금·수표로 인출했다. 국세청은 당첨금 수령 계좌에 남아 있던 금액을 압류했고, 가족 계좌로 이체한 금액은 민사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방침이다. 이번 국세청 조사 대상 중 A씨처럼 고액 복권에 당첨되고도 세금을 체납한 사람은 36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합유(合有)’ 등기를 악용한 체납자가 늘고 있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합유는 여러명이 조합을 결성해 물건을 공동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합유 지분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유 지분과 다르다. 합유자 지분에 대해서는 직접 압류가 제한되기 때문에 체납 세금을 추징하기 어렵다. B씨의 경우 부동산을 판 뒤 세금을 고의로 체납하고, 양도 대금으로 자녀와 함께 합유 형태로 건물을 취득했다.

허위로 근저당을 설정해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국세 체납일보다 근저당 설정일이 빠르면 채권자가 국세 추징보다 우선권을 갖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C씨는 주택 건설 업자로 세무조사에서 고액의 세금이 부과될 것을 예상하고 본인 소유 주택·상가에 허위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근저당 설정 채권자는 C씨의 어머니였다. 국세청 조사 결과, 이 근저당권은 허위 계약에 의해 설정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