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 1월 5일 발표됐다.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는 작년이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작년 11월 경제개발계획 60주년을 기념하는 간담회를 개최했고, 25일에는 ‘경제개발계획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61′ ‘82′ ‘33000′ ‘400′이 무슨 숫자인지 아시겠습니까.”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5.25/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경제개발계획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다가 돌연 퀴즈를 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61년 82달러에서 지난해 3만3000달러까지 약 400배 성장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60년 전만 해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동생을 업고 있는 소녀 사진이 국제 구호기구 포스터에 단골로 등장하던 나라였다. 맥아더 장군이 전쟁 직후 “이 나라가 복구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한국은 이제 주요 선진국 모임인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60년간 국민소득 400배 증가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수출 중심으로 탈바꿈하려는 과감한 시도였다. 1960년대 들어 국가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던 미국 원조가 급감하면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한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 생산과 수출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어진 2차 계획(1967~1971년) 기간에는 베트남 파병과 차관 도입 등으로 끌어모은 돈을 산업구조 근대화에 쏟아부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포항 백사장 위에 제철소를 지어 첫 쇳물을 생산했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토 ‘대동맥’으로 통하는 경부고속도로를 2년 5개월 만에 완공해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6%일 정도로 고속 성장하면서 남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969년 처음으로 북한을 추월했다.

3차 계획(1972~1976년)의 핵심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중심이던 산업구조를 중화학공업으로 재편한 것이다. 철강·전자·조선 등 6대 전략 업종을 선정해 집중 육성했다. 4차 계획(1977~1981년)을 막 시작하던 1977년엔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000달러 수준으로 올라왔다. 5차 계획(1982~1986년) 때는 중공업 육성 정책이 결실을 맺으면서 만년 적자였던 경상수지가 1986년 흑자로 전환했다. 1980년 28.7%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4%까지 안정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달라졌다. 6차 계획(1987~1991년) 때인 1987년 성장률은 12.5%에 달했다. 1987년 취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반도체 투자를 늘렸고,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다. 7차 계획 기간인 1994년에는 1인당 GDP가 처음으로 1만달러를 돌파했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수출 3900배, 자동차 510배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의 수직 상승이다. 제1차 5개년 계획이 진행되던 1965년 수출액은 1억75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작년 수출액은 6839억4500만달러로, 3900배 넘게 뛰었다.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2고로 화입식에서 박정희(맨 앞) 전 대통령과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당시)이 불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그 결과 지난 1962년 미국과 UN에서 2억3231만달러의 무상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원조 공여국’이 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규모는 27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개발을 시작할 때 지원받았던 돈의 12배를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커지는 만큼 국민들의 구매력과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예컨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966년 5만대뿐이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작년 2550만대로 510배 급증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60여 년 전 보릿고개라 불렸던 절대빈곤 상황에서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했다”면서 “그 결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세계 8강 진입을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