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2021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기준금리를 숨 가쁘게 3%포인트 올린 후 2월과 4월 동결한 데 이어 이달까지 3차례 연속 ‘동결 카드’를 꺼낸 것이다.

올해 경기가 식어가면서 ‘상저하저(상반기와 하반기 모두 성장이 낮은 것)’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금리를 낮춰서 경기를 부양할 수는 없어 꺼낸 고육책이란 말이 나온다.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눈높이를 석 달 전 예상(1.6%)보다 낮은 1.4%로 수정했다. 한은은 특히 이날 “중국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선진국 금융불안이 확대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래픽=김성규

◇최악 경우 1%대 초반 성장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1.4%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2%)을 한참 밑도는 데다, 코로나 팬데믹 첫해인 2020년(-0.7%)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성장세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더뎌 상반기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는 시점도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성장률 전망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은은 작년 5월 올해 성장률 전망을 2.5%에서 2.4%로 낮추는 등 5차례 연속으로 올해 성장률 전망을 낮췄다.

한은이 경제가 식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물가가 생각보다 빨리 낮아지지 않는 데다, 미국이 금리를 아직 높게 유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내려 한미 금리 격차를 더 벌리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식료품과 에너지 등 가격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올해 전망을 석 달 전(3.0%)에 비해 오히려 오른 3.3%로 바꿨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결정 때 핵심적으로 보는 것은 근원 소비자물가다. 그간 각 분야에서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높고, 고용과 서비스 부문 수요가 양호해 근원 물가가 생각보다 빨리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금리 인하 언급은 시기상조”

그렇다고 물가를 빨리 떨어뜨리려 금리를 더 올리기엔 더더욱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금도 고금리 고통에 허덕이는 취약 계층 부담이 더 커지고,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 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앞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진 않았다. 이창용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절대로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일단 ‘끈적한 물가’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위원 6명 전원이 최종금리를 지금보다 0.25%포인트 높은 3.75%로 전망하고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물가가 확실히 2% 목표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진 인하 시기를 언급·생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상을 중단할지 아니면 계속할지 불확실해 (정책 결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차이는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져 있다. 한국이 먼저 인하했다간 격차가 2%포인트대가 된다. 금리 차가 커지면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진다. 이같은 우려 속에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6원 오른 1326.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처럼 저금리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 않아 다중 대출자나 부동산 PF 등이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며 “개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중장기적으로 빚 내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등 구조개혁 시급해”

이창용 총재는 이날 우리 경제의 구조 개혁 필요성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진 우리 경제를 돈 풀거나 금리 낮춰서 일으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저출산과 고령화가 너무 심해 우리나라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와있다고 본다”면서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개혁이 정말 필요한데,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타협이 안 돼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