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C 본사 모습./H3C

미중 기술협력의 상징이었던 IT장비 업체 H3C(중국명 신화산·新華三)이 100% 중국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미국 HPE가 갖고 있던 이 회사 지분 49%를 중국 반도체 공룡인 칭화유니그룹이 전량 인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H3C는 기업 와이파이 공유기 및 HPE의 서버·스토리지 제품을 독점으로 중국 시장에 공급하는 업체로, 지난해 연매출 498억 위안(약 9조 3500억원)에 영업이익 37억 3100만위안(약 7005억원)을 낸 중견 기업이다. IT업계에서는 “미중 디커플링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6일 칭화유니그룹은 그룹의 100% 자회사인 유니스플렌더를 통해 35억 달러(약 4조 6500억원)에 HPE가 갖고 있는 H3C의 지분 전량을 매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지분 매입을 예고했던 칭화유니그룹이 이번에 구체적인 가격과 매입 방법을 공시한 것이다. 칭화유니그룹은 이번 거래를 위해 35명의 특정 대상으로부터 120억위안(약 2조 2500억원)의 자금을 모금하고, 나머지 자금은 회사와 대출자금 등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지분 거래가 마무리되면 H3C는 유니스플렌더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게 된다.

H3C의 역사는 지난 20년간 미중 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H3C는 지난 2003년 미국 컴퓨터 장비 제조사인 쓰리콤(3Com)과 중국 화웨이가 미국 시스코시스템스를 견제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당시 기술력이 한참 뒤쳐져 있던 중국은 외국계 기술 회사에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을 제공해주며 합작회사를 차리는 것을 장려했었다. 그 후 2006년 화웨이는 지분 전체를 쓰리콤에 넘겼고, 2010년 HPE의 전신인 HP가 쓰리콤을 인수하며 자회사로 있던 H3C의 소유권도 HP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미중의 관계는 2013년 시진핑 시대가 본격 개막하면서 갈등 수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전직 미 국가안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불법 사이버 감시 폭로 이후 중국이 사이버보안을 이유로 자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HP에서 분사하며 H3C의 지분을 갖게된 HPE는 지난 2015년 H3C의 지분 51%를 칭화유니의 자회사인 유니스플렌더에 매각했다. 100% 미국 자본 회사였던 H3C를 다시 중국이 대주주인 ‘합작사’로 변모시키며 활로를 모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미중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2019년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본격 시작된 미중의 디커플링에 주요 외국계 기업들은 중국에서의 사업을 사실상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HPE는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H3C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탈중국’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었다. 다만 그 동안 파산과 회생 위기를 겪은 칭화유니가 H3C의 지분을 당장 매입할 여력이 없어 매각이 계속해서 늦춰진 것이다. 칭화유니는 지난해 7월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끝내고 기사회생했다. 결국 중국 정부의 자금으로 한때 미중 기술 협력의 상징이었던 H3C가 결국 100% 중국 자본 회사로 변화하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