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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김모(57)씨 부부는 최근 수도권 외곽에서 맘에 꼭 드는 전원주택을 발견하고 바로 매매계약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의 전세금을 돌려받으면 자금 여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 계약이 곧 끝나는데도 집주인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자 김씨 부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집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하소연했지만, 집주인은 “임차인을 구해야만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다”며 버텼다. 김씨는 “꿈꿔왔던 전원 생활이 헝클어지고 전원주택 계약금까지 날릴 위기라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최근 고금리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자 세입자가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위험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한창 고공 행진 할 때는 전세 수요도 많아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자 폭탄’을 피하려고 목돈 대출받기를 꺼리는 요즘은 전세 수요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퇴직 시점에 맞춰 전세금을 뺀 뒤 노후를 보낼 전원주택이나 별장을 사려는 상당수 5060 세대의 ‘은퇴 계획’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행법에 따라 전세 세입자의 권리를 잘 확보해놓으면, 많은 경우 곤란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전세금 미반환 위험’을 피하는 ‘꿀팁’ 세 가지를 소개한다.

◇전세 만료 2개월 전엔 “연장 안 해” 통보해야

우선 세입자인 임차인은 전세 계약 만료일부터 최소 2개월 전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집주인인 임대인에게 먼저 전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차인이 이사 갈 집에 계약금을 걸어 둔 사실을 임대인에게 만료 2개월 전에 통지했는데 제때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계약금을 날린 경우 임대인이 전액 손해배상해야 한다. 미리 계약 해지의 뜻을 밝혀놓아야, 나중에 임대인과 다툴 때 이런 판례를 근거로 들며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래픽=김현국

둘째로 전세 보증금 반환 없이 계약 만기일이 지났는데 임차인이 새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차권 등기’를 하는 게 안전하다. 임차권 등기란 임차인이 다른 채권자에게 대항력을 갖춘 상태로 주소를 이전하기 위해 관할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다. 만약 임차권 등기를 하지 않은 채 주소를 이전하면, 나중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반환 순위에서 밀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임차권 등기를 하면 처음 전셋집에 전입신고한 날을 기준으로 반환 청구권의 순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픽=김현국

◇‘임차권 등기’ 하면 이사 가도 전세금 확보

만약 임대인이 끝까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최후 방법으로 법적 구제 절차를 고려해야 한다. 법적 수단은 ‘지급 명령’과 ‘전세 보증금 반환 소송’을 들 수 있다. 지급 명령은 임차인이 요건을 갖춰 신청하면, 법원이 임대인을 따로 심문하지 않고 바로 전세금 지급을 명령하는 제도다. 소송에 비해 절차가 간편하다. 지급 명령 신청 후 임대인이 이 내용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바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이의신청을 하면 소송으로 넘어간다.

지급 명령을 거치지 않고, 전세 보증금 반환 소송을 바로 제기할 수도 있다. 지급 명령 송달에 필요한 집주인 주소를 명확히 모르거나 연락이 안 될 때, 혹은 집주인이 이의신청할 것이 확실할 때는 이 방법이 오히려 더 빠를 수 있다. 지급 명령은 2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 단계를 건너뛰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 반환 소송은 임차인이 주소 관할 지방법원 민사과에 소장을 내면 된다. 여기서 승소하면 판결문과 집행문을 받아 경매 신청을 할 수 있다. 경매로 낙찰 후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유지하면 권리 신고와 배당 요구를 통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갭 투자’ 만료 다가와… 리스크 더 커진다

부동산 업계에선 올 하반기 이후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약 2~3년 전 높은 전세 보증금 때문에 ‘갭 투자(전세 낀 주택 매매)’가 급증했는데, 그때 체결된 계약의 만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컸던 주택일수록 최근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임대인이 느끼는 보증금 반환 부담은 커진다. 그리고 임대인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면, 이 부담은 다시 임차인에게 전가된다.

과거 1998년 외환 위기, 2002년 카드 사태,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깡통 주택’, 역전세, 전세 보증금 미반환 등 각종 전세 관련 문제가 터졌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비록 전세가가 높더라도 다음 세입자에게 높은 전세 보증금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불황기 때는 이런 흐름이 깨지는 것이다.

최근 전세금 보증보험의 보증 기준이 강화된 것도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예컨대 원래 빌라 시세는 통상 공시 가격의 150%로 산정해 왔으나, 기준이 강화되면서 140%로 제한됐다. 또 이전에는 매매가 대비 100%까지 전세금 보증보험을 들 수 있었지만 지난 5월부터는 90% 이하만 가입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