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만금 기본계획을 재검토해 ‘새로운 빅 픽처(큰 그림)’를 마련하기로 하면서 30년 넘게 추진돼 온 새만금 개발 사업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본지는 국토·도시 계획 전문가 10명에게 새만금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당초 쌀 농사를 위해 조성했던 농업 용지의 비중을 줄여 기업형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된 새만금 산업지구에 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외 첨단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스마트팜과 생산 시설은 신재생 에너지에 유리한 새만금의 입지를 살려 태양광·풍력 전력으로 가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미 투입된 비용을 최대한 살리면서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새만금을 ‘신재생 에너지와 첨단 산업이 결합한 자족형 미래 도시’로 조성하는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와 첨단 산업의 결합

전문가들은 새만금 개발 계획에서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부분으로 농지(농·생명 부지)를 꼽았다. 1989년 새만금 기본 계획 수립 당시만 해도 식량 생산 기지 확보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쌀이 남아도는 지금 시기엔 굳이 넓은 농지가 필요하지 않다. 홍준현 중앙대 교수는 “농업 용수 확보가 쉽지 않고, 토질도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며 “스마트팜이나 산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농지를 줄이더라도 IT를 농업에 접목한 스마트팜을 조성하면 첨단 농업 전초기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LG CNS는 2016년 새만금에 유리온실에서 토마토·파프리카를 재배해 수출하는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했지만 농민단체 반대로 무산됐다. 김재구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팜에 인공지능(AI)까지 결합하고, 에너지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면 이상적인 개발이 될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에 대비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새만금의 신재생 에너지와 첨단 산업을 결합시키는 산업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새만금은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태양광·풍력발전의 효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미 300㎿ 규모 태양광발전 단지가 운전 중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 때 새만금에서 풍력발전 비리 사건이 터지며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 속도를 못 내는 상황이다. 이를 다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만금 내에는 이차전지를 비롯해 다양한 첨단 업종 기업이 입주했거나 입주할 예정이어서 전력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국내 첨단 기업들이 RE100(신재생 에너지 100% 사용) 전략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을 따라 사람들이 모이면 자족 도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안목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처럼 미래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삼성이나 현대차, LG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을 구현해 한국판 ‘네옴시티’를 조성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일부 지역 정치권에선 새만금에 디즈니랜드 같은 대형 테마파크를 유치하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특색 있는 관광 단지로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경쟁력 있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건축가는 “새만금 앞에 있는 고군산군도 등은 예술과 건축을 접목해 세계적 관광지가 된 일본 나오시마처럼 개발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칸막이 없애고 유연한 마스터플랜 체계 필요

새만금 개발이 그동안 표류한 데는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체계도 원인이 됐다. 새만금은 지역적으로 군산과 김제, 부안에 걸쳐 있다. 이 때문에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 간 이익을 조율하기 어려웠다. 김형주 군산대 교수는 “시·군 단위를 넘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개발 계획을 관리해야 사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만금이 완성되기까지 아직 수십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향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더 유연하게 현실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양승우 서울시립대 교수는 “새만금 개발 계획을 처음 수립한 30년 전과 지금의 기술 수준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다르다”며 “미래에 새로운 프로젝트도 들어올 수 있도록 너무 경직되게 개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