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 년간 고속 성장 신화를 쓰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긴 시련을 겪었다.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대표되는 버블 붕괴와 이에 따른 소비 침체, 초고령화 등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경제 숨통을 조였다. 1960~1970년대 연평균 7%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은 이 기간 1%대로 뚝 떨어져 ‘저(低)성장의 아이콘’이 됐다.

최근의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꼭 닮아가고 있다. 1980~1990년대 7~8%대를 기록한 한국 경제 성장률은 2010년대 들어 3%대로 낮아졌고, 올해는 잘해야 1.4% 성장이 예상된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2%대)보다도 낮은 초감속 성장에 접어든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할 때 겪었던 문제들(과도한 부채, 높은 자산 가격, 빠른 인구 고령화)은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약점과 꼭 닮았다. 특히 국력의 기반인 인구 문제가 그렇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2년 69.8%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20년 59.1%로 떨어졌고 2065년이면 51.4%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합계출산율이 일본(2022년 1.27명)보다 낮은 한국(0.78명)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세가 더욱 가파를 전망이다. 지난해 전체 인구의 71%를 차지한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2070년엔 절반에 못 미치는 46.1%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게 통계청 추산이다.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줄어드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생산가능인구가 1% 줄어들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은 0.59%씩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령층 부양 부담이 커질수록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던 일본은 반도체·전기차 등 신산업으로의 발 빠른 전환에 실패하면서, 무역 적자라는 고질병도 안았다. 2012년부터 무역 적자가 커지더니 지난해엔 20조엔 가까운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이 여파로 경상수지 흑자도 대폭 줄었다.

한국도 25년간 이어온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덕을 톡톡히 봤던 중국 경제 고속 성장기가 저물면서 무역 적자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는 선진국으로 간주되는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인구 노령화와 글로벌 공급망 변화, 가계 부채 증가 등 구조적 역풍을 맞으면서 이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며 “재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