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이날 추 부총리는 "전반적인 상속세 개편안을 올해 내놓기 어렵다"고 했다.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2025년 총선을 앞두고 ‘상속세 단계적 폐지’를 검토하는 것과 달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한국에선 상속세 개편 논의가 오히려 잠잠해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자 감세와 세수 감소 같은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정치권과 정부가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금의 20%)까지 합치면 세율이 최고 60%로 뛴다. OECD 평균은 15%로 한국보다 한참 낮고, 상속세가 없는 회원국도 15곳이나 된다. 익명을 요구한 조세 전문가는 “일본은 금융실명제가 전면 시행되지 않아 가명이나 차명 계좌로 세금을 내지 않고 상속하는 경우가 많고, 각종 공제 제도도 한국보다 다양하다”면서 “실제 부담하는 실효세율로 따지면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상속세 개편 논의는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망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삼성가(家)가 12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막대한 상속세를 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개편의 초점은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징벌적 세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유족들의 세금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방식에 맞춰졌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율 및 과표구간 조정은 신중한 입장이지만, 상속세 부과 방식을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산세는 고인이 남긴 재산 총액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만, 유산취득세는 유족들이 각자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기 때문에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추경호 부총리는 “과세 체계 합리화, 국제적 동향 등을 고려할 때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 2월 상속세개편팀을 꾸려 검토에 착수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정부 관계자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자고 하면 당장 야당이 부자감세라고 정치적 공세를 펼칠 게 뻔하기 때문에 누구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