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을 갔다가 위스키만 네 병을 샀어요. 야마자키·히비키(일본 위스키) 구하려고 쇼핑몰을 몇 바퀴나 돌았나 모르겠네요.”

/그래픽=이철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기업 직원 권모(41)씨 부부는 지난 8월 일본으로 ‘위스키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부부끼리 홀짝이던 위스키 맛에 반해 올여름엔 아예 위스키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오로지 위스키를 사기 위해 일본 후쿠오카나 제주로 여행 갔다가 3시간 만에 돌아오는 ‘퀵 턴(quick turn)족(族)’까지 생기는 시대다.

코로나 유행이 장기화한 여파로 독주(毒酒)를 즐기는 음주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실내에서 한두 잔씩 마시던 독주 문화가 코로나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사람들과 어울려 마시는 ‘사회적 음주’에 접목되고, 한국 특유의 ‘빠르게 털어 넣는’ 음주 문화와 융합하며 과음·폭음을 낳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역대급 독주 열풍

실제로 코로나 엔데믹 이후 술 시장에선 ‘위스키 바람’이 거세다. 2일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스카치·버번·라이 등 위스키류 수입량은 2만2779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6267톤)과 비교해 40% 늘었다.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올해 연간 수입량은 2002년 기록한 연간 최대 수입량 2만7379톤을 가뿐히 넘어설 공산이 크다.

원래 ‘중장년층의 술’로 통했던 위스키는 주 5일제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으로 회식이 줄어든 데다, 독한 술을 멀리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홈술’과 ‘혼술’ 문화로 집에서 한두 잔씩 즐기는 위스키 소비가 독주 문화 부활의 기폭제가 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더구나 최근, 위스키에 탄산수나 토닉워터 등을 넣어 칵테일처럼 마시는 일본식 ‘하이볼’ 음주 문화까지 널리 유행하며 위스키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위스키 열풍은 이번 명절 선물 시장에서도 확인됐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올해 전체 추석 선물 상품 중 판매량 1위는 3000개가 팔린 조니워커 블랙이었다. 롯데마트에서도 올해 위스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늘었고, 특히 고품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40만원 이상 프리미엄 위스키 매출도 3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식 음주 문화에 독주 결합

문제는 이 같은 독주 유행이 한국식 음주 문화와 어우러지며 건강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식 음주 문화는, 양주 한 잔을 천천히 즐기는 서양식 음주 문화와는 달리 한 입에 한 잔씩 털어 넣는 문화다. 여기에 더 센 술을 마실수록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어떤 술을 마시든 알코올을 분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독주를 빨리 마실수록 해독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간 부담이 늘고 기능성 위장 장애와 같은 소화 장애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시훈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간 기능이 취약해지면 체내 혈당 조절도 악화시켜 당뇨 등 추가 질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여성들 음주량이 늘어나는 데 대한 경고도 나오고 있다. 2021년 정신 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보면, 알코올 사용 장애(알코올 중독) 유병률의 남녀 차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30대에선 남성 100명당 2.7명, 여성은 3.2명으로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 전문가들은 “동양인은 몸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이 낮고 여성은 더 취약한데,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 음주가 빠르게 늘며 건강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과·폭음 확산을 막으려면 엔데믹 직후인 지금, 음주 폐해 예방과 치료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전국에서 운영 중인 알코올 전문 병원은 아직 9곳에 불과하고 인력 수준도 열악하다”며 “아이돌 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청년·여성에게 ‘술 마시라’고 유혹하는 광고를 막고, 금연 사업처럼 체계적인 음주 폐해 예방 치료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