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상속세 체계가 2000년 이후 20년 넘게 바뀌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집값 등 자산 가격 상승 등으로 상속세를 내는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세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상속세 과세자 비율 5% 육박

8일 국세통계 및 국회 등에 따르면, 상속이 발생했을 때 상속세를 내야 하는 비율은 2000년 0.7%에서 지난해 4.5%로 늘었다. 2000년에는 피상속인(사망자) 21만2000명 중 상속세 과세 인원이 1400명 정도였는데, 작년 34만8000명 중 1만5800명으로 늘었다. 인원 수로만 보면 20여 년 전보다 11배 증가했다.

그래픽=김현국

상속세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급증했다. 2000년 상속세는 약 5000억원 걷혀 전체 국세(93조원)의 0.5% 수준이었다. 그런데 작년엔 7조6000억원으로 1.9% 수준까지 크게 늘었다.

상속세 면제 한도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상속세는 상위 1%만 내는 세금도 아니게 됐다. 상속세엔 통상 배우자 상속공제(최소 5억원, 최대 30억원)와 일괄공제(5억원)가 대부분 적용되기 때문에 상속재산이 10억원을 넘으면 상속세가 과세된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부동산원의 작년 1월 기준 아파트 중위매매가격 추이를 보면 서울은 9억7050만원으로 10억원에 근접했다. 고인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진 경우, 이를 물려받는 가족들이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선 작년 기준 소득 상위 20%의 순자산액이 10억원이고, 순자산 상위 20%가 가진 순자산액은 약 14억원으로 집계됐다. 소득 상위 20%이거나 자산 상위 20%라면, 자산을 물려줄 경우 가족이 상속세를 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유산취득세 전환 검토

한국은 2000년 이후 상속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과 세율이 그대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2위지만, 최대주주 할증 등이 붙으면 세율이 최고 60%까지 뛰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율(0.54%)도 OECD 평균(0.13%)보다 높다.

상속세를 내는 경우가 늘어나자 정부도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는 작년 10월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올해 2월 관련 논의를 전담하는 상속세개편팀을 꾸렸다.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된다. 우선 과표나 세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과세 대상과 세액이 크게 달라지면서 부자 감세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선 리스크가 크다. 일각에선 물가가 오르는 걸 반영해 세부담을 덜어주는 물가연동 방식도 거론된다. 하지만 한국은 부동산 가격이 물가보다 빠르게 올라 이런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그래서 과표나 세율에 손을 대지 않고 상속세 체계를 개편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행 상속세는 고인이 남긴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별로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결과적으로 세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경우 현행 공제 체계는 바꾸는 방안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OECD 38국 중 23국이 유산취득세를 도입하고 있다.

부동산 세금 계산 서비스 셀리몬에 따르면, 25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와 5억원의 금융재산을 가진 A씨(배우자 없음)가 아들 셋에게 10억원씩 나눠준다고 가정했을 때 현행 상속세 방식을 적용하면 상속세 부담 총액이 7억7600만원(1인당 2억5867만원)이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을 적용하면 상속세 부담 총액은 5억2380만원(1인당 1억7460만원)으로 총액 기준 2억5220만원이 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