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백형선

금융 당국은 15일 글로벌 투자은행(IB) 2곳이 지난 2021년부터 작년까지 9개월 동안 560억원대 규모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일삼은 걸 적발했다고 밝혔다. 불법 공매도 적발 사상 최장(最長)이자 최대(最大) 규모다. 그간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인이 불법 공매도로 국내 증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런 주장이 상당 부분 근거를 갖추게 된 셈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적발한 불법 공매도는 단순한 실수나 착오 등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며 “종합 금융 업무를 하는 글로벌 IB가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많은 종목을 대상으로 고의적인 불법 공매도를 저지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주요 글로벌 IB들을 대상으로도 공매도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외국인 공매도를 전반적으로 점검한다는 것이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매매 기법이다. 통상 주식 매매와 달리, 공매도를 하면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익을 본다. 현행법상 공매도를 할 경우 주식을 반드시 ‘사전 차입(借入·빌리기)’해야 한다. 공매도 시점에 빌린 주식이 없는 무차입 상태였다가 나중에 빌리는 ‘사후 차입’은 불법이다. 제한 없는 공매도로는 가격이 왜곡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그래픽=백형선

◇금융 당국 “고의적 불법 공매도 관행”

이번에 적발된 글로벌 IB 2곳은 지속적으로 무차입 공매도 거래를 해 왔다. 금감원과 금투업계 등에 따르면,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2021년 9월부터 작년 5월까지 9개월간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했다. 홍콩 HSBC도 2021년 8~12월 5개월간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을 무차입 공매도했다.

법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가 어떻게 이뤄졌을까. BNP파리바는 부서 간 주식 대여를 고려하지 않고 소유 주식을 중복 계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BNP파리바의 사내 A부서가 주식 100주를 갖고 있다가, B부서에 50주를 대여해줬다고 하자. 그런데 두 부서 모두 주식 잔고를 집계할 때 대여 내역을 입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BNP파리바 전체적으로는 150주를 보유한 것으로 잘못 인식했고, 결과적으로 이를 팔았을 때 50주만큼이 무차입 공매도됐다는 것이다.

BNP파리바는 무차입 공매도 사실을 곧바로 인지했음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사후에 차입하는 식으로 위법 행위를 방치해 왔다는 것이 당국의 조사 결과다. HSBC는 외국계 기관 투자자로부터 “대신 공매도를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이미 빌린 수량’이 아니라 ‘향후 빌릴 수 있는 수량’을 산정해 공매도 주문을 냈다고 한다. 둘 다 고의적으로 불법 공매도를 했다는 게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카카오 주가, 공매도 기간에 ‘반 토막’

이번에 적발된 공매도로 해당 종목들의 주가가 떨어졌을까. 금감원 관계자는 “개별 종목의 공매도 비중 자체는 크지 않다”며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예를 들어 BNP파리바는 종목당 평균적으로 4억원가량을 공매도했는데, 국내에서 공매도가 가능한 대형주(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가 이 정도 물량으로 시세가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종목의 주가 급락과 외국인 공매도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의혹은 짙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BNP파리바가 공매도한 카카오의 경우 불법 공매도 기간(2021년 9월~2022년 5월) 동안 주가가 15만5000원에서 8만5000원까지 약 4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6% 내리는 데 그쳤다. HSBC가 공매도한 호텔신라도 해당 기간(2021년 8월~12월) 동안 약 17% 하락했는데, 이 기간 코스피는 7% 내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불법 공매도와 주가 하락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이번 불법 공매도 적발로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까지 불법 공매도로 인한 과징금은 올 3월 외국계인 ESK자산운용에 대한 38억7000만원이 최대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회사와 유사한 주요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