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공식품 32개 품목 중 24개의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의 양념 매대. /연합뉴스

고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필품부터 해외여행비까지 품목을 가리지 않고 물가가 전방위로 뛰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를 기록해 석 달 연속 3%대에서 오름세를 보이자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까지 주춤했는데, 다시 물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에 해외 주요 투자 은행들도 한국의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속속 높여 잡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가공식품·해외여행비 상승… 안 오른 게 없다

7일 한국소비자원의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소비자가 많이 사는 가공식품 32개 품목 중 24개(75%) 가격이 1년 전보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에서 가공식품을 집으면 넷 중 세 개꼴로 1년 전보다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가격이 오른 품목의 평균 상승률은 15.3%로 집계됐다.

소비자원은 전국 500여 개 판매점에서 파는 생필품 128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하고, 그중 소비자가 많이 사는 다소비 가공식품 32개의 가격 동향을 매달 발표한다.

품목별로 보면 햄(10g) 가격이 1년 전보다 37.7% 뛰어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케첩(100g) 36.5%, 된장(100g) 29.6%, 간장(100mL) 28.6%, 참기름(10mL) 27.8%, 카레(10g) 25.4%, 마요네즈(100g) 24.1% 등이 많이 올랐다. 가정에 갖춰두고 자주 쓰는 양념류 가격이 훅 뛴 것이다. 이 밖에 생수(100mL) 16.9%, 우유(100mL) 13.8% 등 장바구니에 자주 담기는 품목도 두 자릿수로 올랐다.

해외여행 비용도 급등했다. 평소 고물가로 고통받는 소비자들은 일상을 벗어나서도 고물가에 시달리는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해외 단체 여행비는 1년 전보다 15.9% 상승해 2010년 9월(17.6%) 이후 13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항공권, 숙박비 등이 오른 데다 최근 국제 유가가 뛰면서 국제선 유류 할증료 등도 오른 영향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달 국제선 유류 할증료는 14단계로 지난 6월(7단계) 대비 두 배가량 뛰었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해외 단체 여행비가 1년 전보다 15.9% 올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모두투어 본사 모습. /뉴시스

◇주요 IB, 내년 한국 물가 전망 높여 잡아

해외 주요 투자은행(IB)은 내년 한국의 물가 상승률 전망을 높여 잡고 있다.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8개 주요 IB 중 시티·HSBC·노무라 등 3곳은 내년 한국의 물가 상승률 전망을 전달보다 높였다. 노무라는 1.7%에서 2.3%로 0.6%포인트나 높였고, HSBC는 2.1%에서 2.5%, 시티는 2.3%에서 2.5%로 올렸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 물가 상승률을 각각 2.3%, 2.4%로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시티·HSBC(2.5%) 등 일부 IB는 한국 정부보다 국내 물가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셈이다.

10월 소비자물가가 3%대에서 상승세를 탔던 것은 집중호우, 폭염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유가가 계속 불안했던 영향이었다. 그런데 그 파장이 가공식품 가격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향후 물가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현재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물가’다. 기재부는 물가정책과에 현장 대응팀을 새로 만들어 수급 불안, 애로 사항 등을 직접 현장에서 챙기고 있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물가 상승률이 꺾였다가 도로 오르고 있는데 여기에 편승해서 각 업체가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면 물가가 추가로 오를 우려가 있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 업계와 적극 소통하며 협조를 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