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화폐는 현재 국회 심의 중인 내년 예산안의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중앙정부의 내년 예산안 중 지역 화폐 예산은 ‘0′원이었지만, 민주당이 최근 상임위에서 7053억원을 증액했다. 작년에도 같은 갈등을 빚다 결국 올해 3525억원이 편성되기도 했다. 지역 화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했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국비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지역 화폐는 2018년만 해도 전국적으로 발행액이 4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2년 27조2000억원까지 불어났었다. 재정과 화폐 금융 분야에서 두루 활동하고 있는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지역 화폐는 국가 예산의 ‘낭비’”라고 주장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지난 17일 석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역 화폐를 왜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 지역 화폐 개념, 어디서 왔나

- 지역 화폐는 해외서 들어온 개념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지역 화폐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83년 캐나다 밴쿠버 인근 코목스밸리란 작은 지역에서 시작된 레츠(LETS)라고 할 수 있다. 지역 화폐를 사용하기로 한 회원들끼리 재화나 서비스를 서로 제공하고, 그 가치를 지역 화폐로 전산 시스템에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레츠 성공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실상 최초의 지역 화폐로 본다. 그 이전 1930년대에 미국 여러 지역에서 지역 화폐가 운영되기도 했지만 금세 시들해졌었다. 최근 들어 가장 성공한 지역 화폐로는 2003년 탄생한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킴가우어(Chiemgauer)를 든다. 우리나라는 1996년 강원도 화천에서 발행한 걸 처음으로 친다.”

- 해외에선 왜 만들어졌나

“캐나다의 레츠 같은 경우엔 낙후된 지역에서 현금으로 쓸 법정 통화가 부족하니까 보완적으로 만들어졌다. 독일의 킴가우어는 지역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유로화를 킴가우어로 바꿀 땐 3% 할인해 주고, 거꾸로 유로화로 바꿀 땐 5%를 떼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킴가우어를 쓰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킴가우어는 3개월에 액면 가격의 2%씩 가치가 떨어지게 설계가 돼 있다. 가치가 유지되는 유로화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니 돈을 빨리 쓰라는 것이다.”

- 지역 화폐는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나.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화폐의 기능은 세 가지다. 교환의 매개, 가치 척도, 가치 저장 수단이다. 그런데 지역 화폐는 교환의 매개 기능에 문제가 있다. 각국의 법정 화폐인 원화, 달러, 엔화 등과 달리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사용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지리적으로 어떤 지역이 고립돼 있어 법정 화폐가 부족해 지역에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화폐를 발행한다는 설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고 인터넷망도 활성화됐다. 그러기 때문에 최신 경제학 이론으로 봤을 때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변질된 지역 화폐

- 한국 지역 화폐는 외국과 다른 것 같다.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우리는 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도해 발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에선 민간 단체 등이 조합 회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발행했다. 레츠는 지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킴가우어는 고등학교 교사가 시작했다. 둘째, 외국은 일부 지역에서만 지역 화폐가 발행되고 통용되는데,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거의 모든 지자체가 발행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효과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국내에선 거의 모든 지자체가 쓸 수 있는 업종에 제한을 둔다. 이것도 지역화폐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거의 모든 지자체가 발행한 게 왜 문제인가.

“전국 243개 지자체가 있는데, 2021년 조사로는 232개가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각자 지역화폐를 내다 보니, 소상공인 매출을 늘리는 효과나 지역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서울만 지역화폐를 내면, 경기도 수원에선 쓸 수 없으니 서울에서만 돈을 쓰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수원도 서울로 가는 수요를 막기 위해 지역화폐를 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내면 어느 곳도 다른 지역 수요를 끌어오지 못한다. 당초 카드나 현금으로 쓰던 돈을 지역화폐로 쓰는 것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다. 낙후 지역만 발행하면 그 지역 소비를 살릴 수 있겠지만, 너도나도 내면 그런 효과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 지역화폐가 효과 있다는 연구도 있지 않나.

“경기도에서 지역화폐 100만원 어치를 발행하면 100만원을 경기도에서 쓴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 따져 보려면, 원래 쓰려던 돈 말고 추가로 더 쓴 돈이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그런데 방금 얘기했듯이 거의 모든 지자체가 발행하면 그런 효과는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실증적 연구다.”

- 발행 비용도 들지 않나.

“지역화폐 발행과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이 평균적으로 액면가의 10% 안팎에 달한다. 100만원 어치 지역화폐를 내면 10만원 쯤이 발행, 유통 비용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자체들은 액면가 대비 10% 쯤을 할인 발행한다. 그런데 발행, 유통이나 할인에 모두 세금이 들어간다. 세금은 국민 모두 부담이다. 하지만 지역화폐 사용처는 제한돼 있다. 처음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에게만 쓸 수 있다가, 업종을 늘리다 보니 학원, 병원 등에도 쓸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보면 학원비에 많이 쓰는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면, 국민 세금으로 사교육을 지원하는 꼴이 돼가고 있다.”

- 어려운 소상공인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경제학자들이 볼 때 액면가의 10% 내외로 들어가는 발행, 유통비용은 재정 낭비다. 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화폐 사업을 해서 들어가는 비용이란 것이다. 그 10%에 해당하는 돈을 엉뚱한 데 쓰지 말고 직접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데 쓰는 게 더 효율적이다. 다만 비용을 써서라도 전통시장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책 목적이 있을 수는 있다. 그 경우 이미 전국에서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이란 정책 수단이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 지역화폐가 나아갈 길

- MMT(현대통화이론)처럼 경기 살리기 위해 지역화폐를 풀자는 주장은 어떤가.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지역화폐 발행 권한이 지자체장에게 있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으로 지역화폐를 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화폐를 무한정 찍을 수는 없다. 우선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 특정 업종에만 쓸 수 있어서 교환의 매개로서 기능이 원화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때문에 할인 발행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쓰지 않을 것이다. 또 액면가의 10% 안팎이 발행, 유통 비용이다. 이런 지역화폐를 무한정 찍어 내면 지자체 재정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MMT 이론은 국가 법정 화폐를 무한정 찍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폐를 무한정 찍어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세금으로 회수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화폐를 세금으로 회수할 수도 없다.”

- 지역화폐가 소비를 묶어 두는 기능은.

“원화의 경우 한국 사람들의 소비 지출을 한국에만 묶어 놓는 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달러, 엔화 등으로 환전하는 게 점점 쉬워졌고, 국가간 전자상거래도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역화폐는 원화와 달리 외국 돈으로 환전이 바로 되지 않고, 해당 지역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행하지 않고 일부 지역만 발행하면 그 지역에 소비를 묶어 둘 수는 있다.”

- 한국에서 지역화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어떤 지역에서 전통시장 지원이 시급하다던지, 일부 소상공인 업종 지원이 절실하다던지 하는 건 지역 밀착형으로 일하는 지자체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역화폐는 그런 데 강점을 가질 수 있다. 비용을 들여서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면 지자체가 나설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거의 모든 지자체가 나서면 효과가 없다. 정말로 낙후된 곳만 타겟팅해서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재정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화폐를 거쳐서 지원하기 보다는 어려운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게 낫다고 본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역화폐의 해외 사례를 국내와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지역화폐

사용처와 사용 지역이 해당 지방자치단체 내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으로 한정돼 있는 상품권을 가리킨다. 공식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이지만, 통상 지역 화폐라고 부른다. 한국은행은 지역사랑상품권은 법정 화폐가 아니어서 화폐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 석병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재정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통화정책, 재정정책, 주택시장 등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