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1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다. 6개월 내 금리 인하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1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내놓은 메시지는 이렇게 3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이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13일(현지 시각)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금리 인상 주기의 정점에 도달했거나 근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 회의에서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었다. 파월의 이 발언은 확실한 통화정책 선회(피벗·pivot)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연말 세계 금융시장이 들썩였다.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 신청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한층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금리 인하 힌트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 투자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과 금리 차가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미국이 실제 금리 인하에 나서는 모습이 확인된 후에야 내려가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로 유지했다. 지난해 1월 0.25%포인트 올린 이후 8번 연속 동결이다 /그래픽=김성규

◇“적어도 6개월 이상 금리 인하 쉽지 않을 것”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작년 2월부터 8회 연속 동결이다.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 모두 향후 3개월 금리를 연 3.5%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작년 마지막 금통위였던 11월 회의 때는 위원 4명이 0.25%포인트 추가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이번엔 위원 5명이 모두 기준금리 유지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달라진 분위기가 읽혔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관련해서는 “금통위원들 모두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앞서나가는 인하 기대를 막아섰다. 이 총재는 사견임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물가가 아직 3%대로 높은 데다 미국과 금리 차가 2%포인트 벌어진 상황에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는 과도하다. 우리나라는 하반기 이후가 돼야 금리 인하를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김성규

◇”부동산 PF 위험 증대” 걱정 속 “소총 쏠 때 아냐”

이 총재는 이날 부동산 PF를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 “이것(태영건설 워크아웃) 뒤에 큰 게 올 게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총재는 “태영 사태가 지금 현재 부동산이나 건설업에 큰 위기로 번져서 우리나라의 시스템 리스크로 변할 가능성은 적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부동산 PF 상황이 기준금리 인하 등의 통화정책 카드를 꺼내야 하는 수준으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시장이 흔들리는 정도에 따라서 저희가 대포를 쏠 수도 있고 약간의 소총으로 막을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소총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금융 중개 지원 대출 한도 유보분 9조원을 활용해 중소기업 한시 특별 지원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한은이 연 2% 저금리로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해,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에 저리로 대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상당 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고금리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영향받을 수 있는 취약 중소기업, 특히 지방 중소기업 지원을 선별적·한시적으로 하자는 결정”이라면서 “태영건설 사태나 부동산 PF와 직접 연결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