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형 마트들이 넷째 일요일인 28일 문을 열었다. 정부가 지난 2012년 대형 마트 둘째·넷째 일요일 의무 휴업제를 도입한 지 12년 만이다.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은 당초 전통 시장 등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의도로 마련됐다. 하지만 골목 상권이 아닌 온라인 쇼핑몰만 이득을 봐,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서초구는 서울 지역 최초로 이 규제를 폐지했다.

이날 오전 8시에 찾은 서울 서초구 한 마트에는 시민 10여 명이 개점 전부터 줄 서 있었다. 마트에서 채소를 산 김기홍(67)씨는 “평일에는 장을 볼 시간이 없어서 휴일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마트 휴무일이 바뀌어 걱정 없이 아내와 장을 보러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황범옥(66)씨도 “둘째·넷째 일요일마다 마트가 쉰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차를 끌고 왔다가 발길을 돌린 적이 잦았다”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고 했다. 서모(59)씨는 “공산품이나 채소를 살 때도 선택권이 다양해져 앞으로 주말마다 더욱 편리해질 것 같다”고 했다.

일요일인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 마트가 시민들로 북적이는 모습. 서초구는 이날 서울 25개 자치구 중 최초로 금지됐던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을 허용했다. /조재현 기자

서초구는 서울 자치구 중 최초로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일을 매주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꿨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 마트는 매월 공휴일 이틀을 휴점해야 하는데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치면 평일로 휴무일을 바꿀 수 있다. 서초구는 작년 말 구내 유통 업계와 상생 협약을 맺고 휴무일 변경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28일부터 대형 마트 3곳과 준대형 마트 32곳이 문을 열었다.

대형 마트 인근 소상공인들은 매출 신장을 기대했다. 이날 대형 마트 앞 한 카페에는 손님 5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모(74)씨는 “마트에 왔다가 바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다”며 “앞으로도 일요일에 장을 본 후 카페나 주변 가게들도 자주 둘러볼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장을 보고 나면 인근 옷 가게 구경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서초구 대형 마트 앞 카페 직원 A씨는 “평소 다른 일요일보다 20~30% 정도 손님이 더 방문한 것 같다”고 했다. 신발 가게 사장 B씨는 “일요일에도 마트가 문을 연다는 것을 손님들이 더 많이 알고 나면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인근 빵집 직원 C씨는 “원래 마트가 쉬는 날에는 주변의 다른 가게도 다 같이 문을 닫아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실제로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이 재개되면서 인근 소상공인의 매출도 올랐다. 대구시가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뒤 6개월 동안 대형 마트 인근 소매업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8% 증가했다. 대구시는 작년 2월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일을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주말에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 주변 상권을 찾는 유동 인구도 늘고, 주변 소상공인의 매출 상승 효과도 커질 것”이라며 “매출이 늘어나면 소비자를 끌어들일 방법을 더 연구하게 돼 추가적인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고 했다.

전통 시장 상인들은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 재개가 자신들의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초구의 한 전통 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는 심정예(81)씨는 “마트가 일요일에 여는 것은 장사에 영향을 크게 주지 못한다”며 “평소에도 워낙 장사가 안 되니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상인 기모(75)씨는 “요즘 워낙 불경기가 심해 시장 찾는 손님들도 줄어서 마트 휴일 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다”고 했다.

지자체의 대형 마트 공휴일 의무 휴업 폐지는 확대될 전망이다. 서울 동대문구는 2월부터 대형 마트 공휴일 의무 휴업을 없애기로 했다. 정부도 지난 22일 대형 마트 공휴일 휴업 폐지를 골자로 한 법 개정 추진을 선언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형 마트 공휴일 휴업 규제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큰 효과가 없었다”며 “굳이 소상공인 보호책을 만든다면, 대형 마트와 소상공인이 다루는 품목에 차이를 두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