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의 엔화 및 달러화 모습. /뉴시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보다 3.1% 올라 전문가 예상인 2.9%를 웃돌자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강세’가 힘을 얻었다. 달러와 비교한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 가치는 급락했다.

1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전날보다 1엔 오른 달러당 150.5엔을 기록했다. 작년 11월 이후 3개월 만에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50엔 선을 넘어선 것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7.3원 오른 달러당 1335.4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와 엔화 모두 달러 대비 약세였지만, 상대적으로 엔화가 더욱 약세여서 100엔당 원화 환율은 올 들어 최저 수준인 880원대까지 내렸다. 그만큼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빨리 떨어졌다는 뜻이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올 초 920원까지 올랐지만 작년 12월 이후 2개월 만에 880원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엔저에 원엔 환율 880원대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작년 11월 중순 달러당 151엔대까지 올랐다가 한 달 만인 작년 12월 141엔대로 10엔 정도 떨어졌다.(엔화 강세) 미국이 기준금리를 곧 내릴 것으로 전망됐고, 반면 일본은행(BOJ)은 긴축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국 기준금리는 올해 하반기나 돼야 인하를 시작하고, 일본은행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당분간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으며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1월 미국 소비자물가마저 예상을 웃돌게 나오자 미국 기준금리 조기 인하론이 힘을 잃으면서 엔화 약세에 속도가 붙었다.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의 돈줄 조이기는 6월 이후나 시작될 것으로 본다. 엔저(低)가 4개월 정도 더 지속될 것이란 뜻이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는 “봄철 일본의 임금 협상 시즌인 춘투(春鬪)가 지나 임금이 오르고 소비 진작이 일어나 디플레이션(장기 물가 하락)에서 탈출하는 것을 확인한 뒤 긴축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 후 가장 빠른 통화정책 시기가 6월이므로 그때가 돼야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엔당 원화 환율도 이때까진 올라갈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한국 수출엔 부정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5~2022년 엔화 환율 변화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한국 수출액은 0.6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김성규

◇美 5월 금리 인하 확률 50→35%

뉴욕타임스(NYT)는 13일 예상 밖 상승세를 보인 1월 소비자물가에 대해 “1월 상승률은 예상보다 덜 냉각됐다. 이는 가격 인상을 통제하는 과정이 여전히 험난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1월 미국 물가 상승의 주요인은 집값이었다. 물가지수에서 35%를 차지하는 주거비가 6% 올랐다. 이에 따라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물 건너간 분위기다. 미국 기준금리 예측 모델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다음 달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10% 선까지 떨어졌다. 한 달 전 이 확률은 77%였다.

5월 금리 인하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물가 발표 직전 50%가 넘었던 5월 금리 인하 확률은 발표 직후 35%까지 떨어졌다. 미국 통화정책 분석 기관 LH마이어는 “1월 물가는 연준 인플레 목표치(2%)를 감안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수치”라며 “3월은 고사하고, 금리 인하 시점을 6월로 미루려는 유혹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상업용 부동산 시름도 깊어져

당분간 고금리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상가, 빌딩 등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재택 근무 확산에 더해 인공지능(AI) 도입으로 해고가 이어지면서 미국에선 사무실 공실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임대료를 벌지 못하는 부동산 회사들은 대출 부담까지 커지면서 부도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통상 부동산 회사들은 만기가 2~3년으로 비교적 짧은 대출을 받는데 만기가 되면 대출을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2022년부터 작년까지 1년여 만에 미국 기준금리가 제로(0%) 수준에서 연 5%대까지 급등하면서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및 다가구주택 부동산 관련 대출 중 20% 정도인 9290억달러(약 1234조원)의 만기가 연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