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아리온은 감사 의견 거절로 2020년 3월 19일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거래소는 아리온에 2021년 4월까지 1년의 기업 개선 기간을 줬지만, 그 기간에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지 못했다. 결국 2021년 11월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하지만, 거래정지 기간에 아리온은 3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 감자(減資)를 진행했는데, 그에 따른 변경 상장 신청을 하지 않아 상장폐지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무상 감자로 상장 주식 수가 달라졌기 때문에 변경 상장이 돼야 정리매매 등 상장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회사가 폐업한 상황이라 후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9일까지 아리온의 거래정지 기간은 1433일에 달한다. 이 종목 투자자는 “대체 언제 상장폐지가 되느냐”면서 “차라리 내 차트(보유 종목 목록)에서 사라지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4일 기준 유가증권(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 사유 발생 등의 이유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70개(스팩, 주식 액면 분할 등으로 인한 단기 거래정지 제외)로 집계됐다.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469일에 달했다. 상장폐지 절차가 늘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증시 자금의 선순환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 당국이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해 증시의 좀비 기업을 조기에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상장폐지 늘어져 ‘좀비 기업’ 증가

거래소는 2009년 상장폐지 실질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실질 심사 과정에서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할 수 있도록 개선 기간이 주어지고, 관련 소송이 진행되면서 거래정지 상황이 길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현재 거래정지 기간이 1000일이 넘는 기업은 11곳인데, 이 중 코스닥 상장사가 9곳으로 코스피(2곳)보다 훨씬 많다.

상장폐지 절차가 늘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증시에서 ‘좀비 기업’이 퇴출되지 않아 증시 활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장폐지 절차가 늦어지면서 투자자들은 털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서 “다른 투자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등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구조 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새로운 자원이 새로운 기업에 배정돼 기업의 활력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상장폐지가 마땅한 기업은 빠르게 정리해주고, 거기에 투입됐던 자금들이 다른 기업에 갈 수 있게 해줘야 증시 활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절차 단축 검토

이에 금융 당국과 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거래소와 상장폐지 절차 단축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리온처럼 회사 측이 협조하지 않아 상장폐지가 되지 않는 경우 등을 포함해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금융 당국과 거래소는 이른바 ‘감마누 사태’의 법원 판단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닥 상장사 감마누(현 휴림네트웍스)는 2018년 3월 회계법인에서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거래소는 감마누에 4개월의 개선 기간을 부여했지만, 감마누는 기한 내 재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했고, 같은 해 9월 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마누 측이 “개선 기간 내에 재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면서 추가 개선 기간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최초 부여된 개선 기간 내에 상장폐지 사유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 이유나 해소 가능성 등을 심사해 추가로 개선 기간을 부여할 수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감마누 측의 손을 들어줬다. 2020년 8월 대법원에서 이 판결은 확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상장폐지를 결정할 때 개선 기간을 충분히 주라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하는 데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반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