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1일 경남 밀양시 산내면 한 과수원에서 농민이 이상기후에 따른 탄저병과 냉해 등 피해를 입어 썩은 사과를 정리하고 있다./뉴스1

올 들어 사과 값이 급등했던 배경엔 기후변화가 있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이상기후 탓에 사과 열매가 덜 맺혀 수확량이 줄어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등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4월 사과 꽃의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약 10일 정도 빨랐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3월 기온이 역대급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전국 평균기온은 9.4도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73년 이후 50년 만의 최고를 기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따뜻한 날씨에 일찍 기지개를 켠 사과 꽃이, 작년 4월 초 영하로 내려가는 꽃샘추위의 피해를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통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꽃눈에 있는 암술의 씨방이 검게 변하며 죽는다. 이 경우 열매가 아예 맺히지 않거나, 맺혀도 수확철 전에 떨어지는 등 상품으로 팔기 어렵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개화기에 사과를 포함한 과수의 이상저온 피해 면적은 전국적으로 3만7864ha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290ha)의 130배가 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여름엔 집중호우가 내려 일조량이 크게 줄었다. 또 9월 무렵엔 고온으로 탄저병이 발생했고, 10월 말엔 최대 사과 산지인 경북에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악재들이 겹쳐 사과 생산량이 급감했다. 작년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톤으로, 1년 전(56만6041톤)보다 30%가량 줄었다. 공급이 줄어드니,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레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26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사과(후지 상품)의 도매 가격은 10kg당 평균 6만6094원으로 1년 전보다 약 77% 높다. 다만 소매 가격은 정부의 각종 할인 지원 정책 영향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날 사과 소매 가격은 10개당 평균 2만4901원으로 1년 전보다는 8% 높지만, 1개월 전보다는 15% 내렸다.

사과는 국내 생산을 대체할 수 있는 해외 수입도 막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조치(SPS)에 따라 사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산 사과를 들여오면 국내에 병해충이 유입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올가을 햇사과가 시장에 나오긴 전엔, 작년 수확돼 보관 중인 사과를 전 국민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올가을까지 사과 도매 가격이 큰 폭으로 내려가긴 어렵다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