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조선DB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68) 회장이 20일 조기 은퇴를 시사했다. 다이먼 회장은 이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승계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제 5년은 아니다”라고 했다. 2005년 취임 후 햇수로 19년째 CEO(최고경영자)인 그는 그간 은퇴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5년 남았다(five more years)”라고 답변했는데, 달라진 것이다.

이는 다이먼 회장이 조기에 CEO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월가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의 퇴장 선언으로 간주되자 JP모건 주가는 4.5% 하락하면서 곤두박질했다. 약 40조원의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날아간 것이다. 앞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다우평균 지수는 이 여파로 하루 만에 4만 선을 내줬다. 리더십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날 다이먼이 자사주에 대해 “이 가격으로는 주식을 대량 매입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도 영향을 줬다.

그래픽=양인성

◇월가 최장수 금융 CEO

다이먼 회장은 2005년부터 JP모건을 이끌고 있다. 세계 10대 투자은행 현직 CEO들의 재임 기간이 평균 7.4년인 것에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오래됐다. 다이먼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베어스턴스, 워싱턴 뮤추얼 등 부실 은행을 헐값에 인수하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워, 미국 내 3위권 은행이던 JP모건을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이 때문에 다이먼에게는 ‘금융 위기 최후의 승자’ ‘월가의 황제’ 같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리스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에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이었던 샌디 웨일의 비서로 금융계에 첫발을 들였다. 웨일의 오른팔로 시티그룹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다이먼이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98년 웨일 전 시티 회장으로부터 직접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절치부심한 그는 2000년 당시 미국 5위 은행인 뱅크원 CEO 자리에 올랐고, 5억1100만달러(약 7000억원) 순손실기업을 3년 만에 35억달러(약 4조8000억원) 흑자 기업으로 바꿔 놓았다. 이후 JP모건이 뱅크원을 인수한 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한때 ‘금융 수퍼마켓’으로 불리며 규모와 수익 면에서 최대였던 다이먼의 ‘친정’ 시티는 이제 JP모건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이먼은 지난해 급여로만 3600만달러(490억원)를 받았다. 포브스는 그의 재산을 약 22억달러(3조원)로 추산한다.

그래픽=양인성

◇직설적인 화법, 월가의 리더

보수적인 금융인들과 달리 직설적인 말투를 구사하는 다이먼은 ‘월가 대변인’으로도 통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미국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라고 확언하며 미국인에게 희망을 줬다. 2022년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6~7회 올릴 것으로 예상해 적중시키기도 했다.

다이먼은 패션 리더이기도 하다. 2016년 실리콘 밸리에서 열린 미팅 참석 직후 직원들에게 캐주얼한 바지와 셔츠 착용을 허용했다. 과거 월가의 주요 고객이 정치인이나 전통 산업 종사자였다면 주요 고객들이 IT 업계 종사자나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후 월가 패션 코드가 바뀌었다.

그는 회사의 연차보고서에 싣는 ‘회장의 주주 서한’을 통해 세금·헬스케어·인프라·교육 등의 공공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월가의 셀럽인 다이먼의 정계 진출설도 끊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다이먼은 미국 재무장관 후보자로 자주 언급됐다. 다만 그의 정치적 성향은 불분명하고 영리하다. 그는 “마음은 민주당원인데, 머리는 공화당원에 가깝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치가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도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다시 맡게 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이사회에서 최소 2026년까지 CEO로 재임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물론 CEO에서 물러나도 이사회 의장 직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다. 향후 다이먼의 후임 후보로는 제니퍼 핍스잭 JP모건 상업·투자은행 부문 대표, 메리앤 레이크 소비자금융 부문 대표 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