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주식인 쌀의 산지 가격과 소비자가격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 만성적인 과잉생산으로 산지 쌀값은 떨어졌는데, 소비자들이 대형 마트 등에서 구입하는 쌀 가격은 11개월째 오름세다. 정부는 유통 업체들이 인건비와 운송비 등 비용 부담을 명분 삼아 마진(이익)을 높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양곡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이 힘겨루기를 벌일 것이 아니라 소비자 부담을 늘리는 쌀 유통 단계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픽=양진경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쌀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7% 올랐다. 4월(4.5%)보다 상승 폭이 커진 것이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월 2.9%에서 지난달 2.7%로 둔화되면서 물가가 안정 조짐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남아돌아서 걱정이라는 쌀값은 고공 행진하고 있다. 쌀 소비자물가는 작년 7월(0.4%)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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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트 쌀값 8.7% 올라

4일 한 대형 마트에서 ‘임금님표 이천쌀 특등급(10㎏)’ 판매가는 4만9900원으로 작년 6월 4일(4만5900원)보다 8.7% 올랐다. 하지만 대형 마트 등 유통사들이 산지에서 쌀을 들여오면서 내는 산지 가격은 하락세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수확기 당시 쌀 한 가마니(80㎏) 가격은 20만원 안팎이었다가 이달 들어 19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쌀 공급이 농협에 몰려 있는데, 재고 부담이 커진 농협이 저가에 쌀을 내놓다 보니 가격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산지 쌀값은 떨어지는데 소매가는 오르는 기현상의 원인으로 정부는 일부 대형 마트의 ‘유통 마진’을 지목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에 수확한 쌀 소비자가격에서 69.1%는 농가 몫이고, 나머지가 유통 업체 비용과 이익이다. 쌀을 농가에서 사들여 도정·가공·포장한 RPC(미곡 종합 처리장) 등이 14.6%, 이들에게서 쌀을 대량으로 사들인 도매상과 대형 마트 등 소매상의 몫이 각각 5.2%, 11.1%였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유통 업체들이 인건비와 공공요금 등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반영하면서 마진도 높인 것으로 보인다”며 “쌀값의 10%대였던 유통 업체의 쌀 마진율이 지금은 1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유통 업체들이 쌀값이 내려가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유통 마진을 덧붙이는 상황”이라며 “쌀은 기본적으로 가격에 대해 굉장히 비탄력적이라 마진을 조금 더 붙여도 수요가 크게 줄지 않는 점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형 마트들은 인건비 등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반영한 것은 맞지만, 마진을 더 높게 책정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올초에 산지 가격이 6% 정도 뛰었고 인건비와 운송비 등이 올라 가격을 올렸다”면서 “마진 구조는 이전과 비교해 변화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대형 마트 관계자는 “최근 산지 가격이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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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과일 현상도 여전

한편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로 전달보다 둔화됐지만, 사과·배 등 과일 물가는 여전히 작년보다 크게 오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사과는 1년 새 80.4%, 배는 126.3%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과와 배는 수입이 안 돼 작년 수확 물량으로 올가을 전까지 버텨야 하는 구조라 상승세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금(金)과일 현상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과일·채소·어패류 물가를 집계한 신선 식품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17.3% 올랐다. 신선 식품 물가는 작년 10월(13.3%)부터 8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우는 폭염과 폭우, 태풍 등으로 채소류 가격이 급등했던 2010년 2월~2011년 3월 이후 13년 2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