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에게 상품 후기를 쓰게 해서 PB(자체 브랜드)상품을 우대한 혐의로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쿠팡은 “PB 상품을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업계 관행”이란 입장이다. 공정위가 업계 관행도 살펴보지 않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취지다.

본지는 18일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을 대상으로 쿠팡의 주장에 대한 각 업체의 의견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은 “쿠팡의 주장은 업계의 관행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다. ‘알고리즘 조작’과 ‘임직원 동원 후기’는 법 위반이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은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지 조사에 답한 회사는 네이버, 11번가, 지마켓, 카카오, 롯데온, 위메프, SSG닷컴, 티몬(2022년 시장 점유율 순) 등 일반 쇼핑몰 8곳과 신선식품 특화 쇼핑몰 컬리 등 총 9곳이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약 57%로, 쿠팡 점유율(24.5%)과 합치면 약 81.5%다.

그래픽=김현국

◊PB상품 우대는 업계 관행인가

쿠팡은 “모든 유통업체들이 PB상품을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온라인 쇼핑몰에서 ‘생수’ ‘우유’ 등을 검색하면 상단에 PB상품이 먼저 등장하므로, 쿠팡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다른 업체들은 “쿠팡이 알고리즘 조작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쇼핑몰들이 직접 만드는 PB상품은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격과 판매량 등이 고려되는 정상적인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 순위 상단에 오르게 된다. 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인위적인 알고리즘 조작으로 PB상품의 순위를 끌어올렸다. 현상의 배후에 ‘불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커머스 업체 9곳은 모두 “쿠팡처럼 알고리즘 조작을 하거나, 임직원을 동원해 PB상품 후기를 작성시킨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다른 쇼핑몰들도 PB상품을 많이 파나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2022년 거래액 기준으로 PB상품 등 ‘자기 상품’의 판매 비율이 70%이고 입점 업체의 판매를 대행만 해주는 ‘중개 상품’은 30%였다. 두 유형의 상품을 모두 상당한 비중으로 팔고 있는데, 여기서 자기 상품만 부당하게 우대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반면 다른 쇼핑몰들은 대부분 중개 상품 위주로 판다. 쿠팡과 함께 점유율 ‘투톱’인 네이버(점유율 23.3%)는 100% 중개상품만 취급하는 이른바 ‘오픈마켓’이다. 티몬, 위메프도 모두 중개 상품만 판매한다. 11번가, 지마켓, 롯데온 등은 일부 자기 상품을 팔지만, 비율은 5~10% 미만으로 낮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개 상품 위주의 플랫폼에서 중개 상품에 불이익을 주며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플랫폼 중에서는 신선식품을 파는 컬리가 자기 상품 비율이 90% 정도로 높다. 컬리 관계자는 “알고리즘에서 중개 상품에 불리한 조작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 진열대도 PB상품 우대인가

쿠팡은 “대형 마트도 진열대에 PB상품 위주로 진열하는데, 이것도 PB상품 우대”라고 주장한다. 업계는 ‘왜곡된 설명’이라고 반박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는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중개 상품을 팔지 않는다. 모두 스스로 사들이거나 제조한 자기 상품이다. 자기 상품을 더 팔려고 중개 상품에 불이익을 준 쿠팡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다 같은 우리 상품인데, PB상품만 더 팔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판매량이 많은 이른바 ‘골든 존’ 매대에 PB상품이 아닌 할인 행사 상품이 오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쇼핑몰 추천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영향주나

쿠팡은 “소비자들은 쿠팡 추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다른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쇼핑몰의 추천 순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왜 플랫폼들이 추천 순위를 만들었겠느냐”고 했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쿠팡이 스스로의 혐의를 축소하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너무 속이 들여다보이는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B 상품, 중개 상품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은 쿠팡 같은 유통 업체가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만 제조 업체에 맡겨 만든 것을 말한다. 이와 달리 ‘중개 상품’은 유통 업체가 제조 업체에서 수수료를 받고 대신 팔아주기만 하는 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