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모(62)씨는 급하게 가족 병원비를 마련하려 그동안 들어 놨던 생명보험을 이용해 최근 보험약관 대출 350만원을 받았다. 금리가 연 9%라 시중은행에 비하면 대출 금리가 높지만, 은퇴해 소득이 잡히지 않는 김씨 입장에서는 은행 대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카드사 대출 금리는 연 10%가 넘는다고 하니 빠르게 신청하고 입금받을 수 있는 보험 대출이 그나마 유리한 조건이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최근 ‘생계형 대출’의 성격이 강한 보험약관 대출을 받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보험사 고령층 가계 대출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보험업권에서 60대 이상 고령층의 연평균 대출 증가율은 7.5%로, 50대(2.6%), 40대(-0.4%), 40세 미만(-4.4%)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빠르게 늘었다. 보험 대출 잔액 중 60세 이상 고령자 대출 잔액 비율은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32.6%로, 전 금융업권 중에서 상호금융(51%)에 이어 둘째로 높았다. 은행의 60세 이상 대출 비율은 24.4%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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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급전 마련 보험대출 찾는 고령층

보험약관 대출은 본인이 받을 보험금을 담보로 보험사에 받는 대출을 뜻한다. 본인이 가입한 보험의 해지환급금 50~95% 내에서 받을 수 있어, 별도 심사나 신용 점수에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담보가 확실해 본인 확인 등 간단한 심사만 거쳐 즉시 돈을 빌릴 수 있고,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어 수시로 원금 상환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부족한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이용하는 개인 대출의 마지막 수단이자 ‘생계형 대출’로 여겨진다.

고령층의 보험 대출이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소득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꼽힌다. 최근 강화되는 추세인 DSR 규제로 은행의 대출 문이 막히자 소득이 적은 고령층이 비교적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보험사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60대 이상 고연령층의 창업 등 자영업 진출, 기타 생활 자금 마련의 필요성 등이 고령층의 보험 대출 증가율이 높은 주요 원인들로 꼽힌다. 2023년 말 기준 보험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중 60세 이상이 40.4%로 나타났고, 생계형 대출 비율도 2.71%로 다른 연령층 대비 가장 높았다.

그래픽=양인성

◇보험 대출 연체율도 고령층이 가장 높아

60대 이상 보험 대출이 늘어나면서 전체 고령층의 가계부채 증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령대별 가계부채를 보면 60대 이상 비율이 2013년 15.7%에서 2018년 18.2%, 2023년 20.4%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또한 65세 이상 대출자의 평균 대출 금액을 보면 2013년 6800만원에서 10년 만에 8600만원으로 늘어 노인들의 1인당 대출 규모도 증가하는 모습이다. 금융연구원은 “생애 주기에 따라 노년에 가까워지면서 부채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은퇴 연령 이후에도 가계부채가 충분히 상환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층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부동산 등 실물 자산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게 특징이다. 자산은 많지만 실제 쓸 수 있는 현금 흐름은 적다는 의미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기준 60세 이상 가구주 보유 자산 중 실물 자산 비율이 82%로 다른 연령대보다 크게 높았다.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이고 현금 흐름이 적으면 대출 원리금을 갚기는 어려워진다.

이 같은 고령층 가계부채의 성격을 고려하면, 급증하는 고령층의 보험약관 대출이 가계부채의 취약 고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13~2023년 보험 대출 관련 연평균 연체율을 비교해보면 60세 이상이 0.5%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보험 대출 연체율은 50대(0.42%), 40대 (0.4%), 40세 미만(0.3%) 등으로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작년 말 보험 대출 관련 60세 이상 취약 차주 비율도 6.73%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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