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밝혀진 900억원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해 증여세를 물게 될 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일 국세청 등에 따르면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과세 여부를 묻는 말에 “시효나 관련 법령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12·12 군사쿠데타의 성공에 기반해 조성된 불법 통치자금에 대해서는 “시효가 남아있고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했다. 법적으로 과세 시효가 지나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의 불법 통치자금이 맞는다면 과세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노 관장 측은 이혼 소송 과정에서 어머니이자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근거로 1990년대 초 선경(SK) 측에 300억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했고, 1조3800억원 규모의 재산분할을 결정하는 핵심 근거가 됐다.

당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는 ‘선경’ 꼬리표가 달린 300억원 외에 가족 등에게 각각 배정된 604억원이 더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두고 “904억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처음 나온 돈이고 불법 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국세청에서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강 후보자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시효·법령 등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6공화국의 불법 통치자금과 관련된 추가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에서는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한 경우, 해당 재산의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다. 과세 당국이 904억원이 적힌 메모를 인지한 시점, 즉 2심 판결일(지난 5월 30일)을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 보면 징수권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다만 비자금 조성 시기가 30년 넘게 지난 만큼 자금을 추적해 비자금의 실체를 단기간에 규명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