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4 환경산업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4년 전 대학 상경 계열을 졸업한 김모(31)씨는 졸업장을 받고 2년 후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집계하는 통계청 기준으로는 2년 전부터 취업자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번듯한 사회 초년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게는 월 50만원, 많게는 150만원을 버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벌써 4차례 거치며 ‘진짜 첫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대기업까지는 아니라도 최소 월 300만원 이상 받는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주변에도 나 같은 취업 삼수(三修)·사수생(四修生)이 적지 않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하는 ‘현역 취업’이나 1년 안에 취업하는 ‘취업 재수’가 줄고 삼수생 이상 취업 장수생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이라도 취업한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만 20~34세 청년들이 대학 등 최종 학력을 마치고 첫 직장을 얻기까지 걸린 기간이 올 들어 1년 2개월에 달해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졸업한 지 1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취업 장수생은 10명 중 3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래픽=김성규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취업했거나 취업 경험이 있는 20~34세 683만2000명의 평균 첫 취업 소요 기간은 14개월로 1년 전보다 1.7개월 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7년 이후 역대 최장 기간이다. 청년층이 양질의 일자리로 진입하는 등용문인 대졸 공채 문호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내수와 건설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생애 첫 직장을 찾는 청년층의 고용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경기도에 사는 이모(31)씨는 대학 졸업반인 2019년부터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눈높이를 낮춰 올해 한 스타트업에 취직한 그는 “각종 공모전 수상과 인턴 체험 등 ‘스펙’을 쌓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대기업 취업을 위한 노력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고 했다.

60·70대를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노동시장 고령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청년층의 구직난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수출을 제외하고는 소비와 설비투자 등 모든 부문에서 경기가 좋지 않아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청년 정규직을 뽑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고용 시장은 60·70대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압도적으로 높고 20·30대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고령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취업자 수는 2841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32만7000명 늘어났는데, 60세 이상 취업자 수 증가 폭이 36만6000명에 달했다. 반면 20대 취업자 수는 8만명 넘게 줄었다.

일러스트=김성규

◇10명 중 3명 이상 취업 장수생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 취업 장수생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34세 취업 유경험자 가운데 졸업 후 바로 취업하거나 1년 이내 취업한 ‘현역’과 ‘재수’는 67.8%인 462만9000명이었고, 1년 이상 걸린 삼수(三修) 이상 취업 장수생은 220만3000명(32.2%)이었다. 졸업 후 취업까지 2년 넘게 걸린 장수생도 133만8000명(19.6%)에 달했다. 어렵사리 얻은 첫 직장도 시간제나 임시직인 경우가 많았다. 20~34세 취업 유경험자들이 평균 14개월 만에 겨우 얻었다는 첫 직장 가운데 18.9%는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이 36시간 미만인 시간제 근로자였다. 이 비율은 2017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다. 계약 기간이 1년 이하인 임시직 비율도 28.3%로 역대 최대였다.

첫 직장 월급이 2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전체 취업 유경험자의 58.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 것도 이처럼 시간제와 임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임시직 비율이 높다 보니, 취업 유경험자 가운데 두 번 이상 취직해 봤다는 청년은 3명 중 2명꼴인 65.7%에 달했다. 5명 중 1명(20.6%)은 네 번 이상 취직해 봤다고 했다. 전 세계적인 기술 패권 전쟁에 직면한 기업들이 경력직 위주로 인재를 찾는 가운데, 새로운 고용 시장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이 ‘과도기적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구조는 ‘고임금 대기업-저임금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정도가 심하다”며 “대기업에 들어가야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유지하며 준비하는 과정을 버티고 있는 청년이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 전문가들 “청년 고용 기업에 인센티브”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같은 과도기적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대기업들의 청년 고용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주원 실장은 “청년들이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 동안 주거와 생활 안정 자금을 지원하는 등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실물 경기가 회복되면 고용도 시차를 두고 살아날 수 있는데, 그 전에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취업에 대한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도기에 청년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박윤수 교수는 “고령층을 위한 단기적인 공공 일자리 창출보다 민간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청년 고용을 늘리는 기업들에 대해 세액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