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법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내년 1월 상속분부터 상속세를 매기기 위한 자녀 공제 한도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리고 최저 세율인 10%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상속 금액에서 각종 공제를 뺀 금액)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확대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25일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상속세 완화 방안과 밸류업(기업 가치 상승) 기업 법인세 인하 등 모두 4조3000억원 규모의 감세안을 내놨다. 상속세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대주주 주식 상속 때 주식 가치를 20% 높여 평가하는 ‘최대 주주 주식 할증 평가’ 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 물가 상승에도 1997년부터 시행된 공제 방식을 28년째 유지하면서 집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를 내는 상황을 손봐야 한다는 학계·재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조치다.

배당을 늘린 기업에 법인세를 깎아주는 내용의 밸류업 대책도 세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속세 세율 인하와 최대 주주 할증 폐지, 법인세 완화 등을 ‘부자 감세’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어, 이번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담긴 정부의 세제 개편 방안 191개 항목 가운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소득세법 등 법률 개정이 필수적인 것이 88%인 168개에 달한다.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는 23개는 현금영수증 적용 대상 확대처럼 여야 간에 큰 이견이 없는 내용들이다.

여야 모두 주장해 온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은 이번 세법 개정안에 담기지 않았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급등세로 정부가 보유세 완화안을 내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최근 시장 상황과 맞물려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고인이 남긴 재산 전체에 대해 상속세를 매기는 현행 방식 대신 각 유족이 받은 상속 재산별로 세금을 물려 세 부담을 낮춰주는 ‘유산취득세’ 방식의 개편안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번 발표에서 뺐다. 내년 1월로 미뤘던 가상 자산 과세는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2027년 1월까지 2년 더 미루기로 했다.

그래픽=양진경

올해 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최종 확정되려면 거대 야당의 반대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윤 정부 1년 차인 2022년 세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는 종부세 세율 인하와 기본 공제 확대 등이 핵심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당시 과도하게 늘어난 종부세의 세 부담을 완화하자는 여야 공감대가 있었다. 이에 여소야대 구도에도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난해의 경우 자녀 결혼 자금 1억5000만원까지 증여세 면제, 경차 유류세 환급 3년 연장 등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은 저출생·민생 대책이 대부분이었고, 감세 규모도 4000억원대에 그쳤다.

올해도 신혼부부에 대한 최대 100만원 세액공제 같은 저출생·민생 대책이나 상속세 공제 한도 확대 등 일부 개정안은 여야 간 협의를 거쳐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국세청 차장 출신인 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5억원의 상속세 일괄 공제를 10억원으로 높이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배우자 공제 5억원과 합쳐 최소 15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배우자와 자녀 2명의 상속세 공제 한도를 최소 17억원으로 상향하려는 정부안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 관람료나 미술관 입장료 등이 대상이었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에 내년 7월 1일부터 수영장·헬스장 이용료도 추가하기로 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도 혜택을 보는 국민이 많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1월부터 2026년 12월까지 초혼·재혼 여부나 신랑·신부의 나이와 관계없이 외벌이 부부면 50만원, 맞벌이면 100만원을 세액공제하기로 한 조특법 개정안도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상황이라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하지만 야권에서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묶을 수 있는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와 법인세 완화 등은 상황이 다르다. 이날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개정안 논의를 담당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입장문을 내고 “2024년 세법 개정안을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작년 역대 최고인 56조원대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와 사상 최악의 세수 결손, 그로 인한 긴축 재정으로 인해 서민 경제와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미래를 위한 세입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野 “상속세 최고 세율, 소득세보다 낮아져”

야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 “노력 없이 얻은 재산에 대한 세율이 땀 흘려 벌어들인 근로소득세 최고세율(45%)보다 낮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부는 해명해야 한다”며 정면으로 반대했다. 최대 주주 주식 할증 평가 폐지에 대해서는 “매출 5000억원 이상 중견기업과 대기업만 혜택을 본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지 않고 소수 주주의 주식처럼 취급하여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최대 주주 주식 할증 평가 제도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주식 평가액을 20% 높여 잡는 제도인데, 상장사의 경우 이미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과도한 과세라는 게 재계 입장이다.

◇정부도 “어려움 있을 것”

밸류업 세제 지원 방안도 민주당의 ‘부자 감세’ 프레임을 넘어서야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 확대 계획을 정부 가이드라인대로 공시하고, 직전 3년 평균보다 배당을 5% 넘게 늘린 회사를 대상으로 직전 3개년 대비 5% 초과분 배당액의 5%만큼 법인세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깎아주는 방안을 내놨는데, 조특법 개정 사항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기업 오너들 스스로가 배당을 많이 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우면 자기 소유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라고 했다.

‘밸류업 회사’로 인정받은 기업 주주들의 배당소득세 감면을 위한 조특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을지 미지수다.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세율은 14%에서 배당 증가분 등에 한해 9%로, 2000만원 초과분은 최고 세율을 45%에서 25%로 낮추는 내용이다. 정정훈 세제실장은 “상속세와 법인세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필요성을 소상히, 성실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이외에 다른 전략이 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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