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 증가했다. 장마에 휴가철이 겹친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수출액은 18.8% 늘었다. 성장률 산정에도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반영된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2분기 수출은 전 분기보다 0.9% 늘었다. 1분기(1.8%)보다는 증가폭이 둔해졌다지만 준수한 성적이다. 반면 2분기 민간 소비는 역성장(-0.2%)했다. 수출 시장은 뜨겁지만, 서민들의 지갑엔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출이 늘어나면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가 늘어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4년부터 20년간 수출과 민간 소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품 수출이 1%포인트 증가하면 민간 소비는 1분기 후 최대 0.07%포인트 상승한 뒤 약 3분기 후까지 그 영향이 파급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 시장이 본격적으로 살아난 것을 감안하면, 내수가 살아나야 할 시기가 벌써 지났다는 뜻이다. 왜 수출 시장에만 볕이 들까. 전문가들은 반도체 수출 의존, 고용 유발 효과가 많은 설비투자의 부진, 고금리 장기화와 가계 부채 부담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래픽=김하경

◇반도체 의존 수출, 내수 진작 한계

올해 상반기 전체 수출은 전년보다 278억달러(약 38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 증가액이 전체 수출 증가액의 80%를 차지한다. 자본 집약적인 산업 특성상 반도체 제조업은 고용 유발 효과와 다른 산업으로 파급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수출 경기의 활력이 내수로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는 투자 부진 장기화 때문이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활발히 추진할 때 증가하는 설비투자는 고용 확대를 수반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투자 10억원에 따른 고용 유발 효과는 7.2명으로, 수출 10억원당 고용 유발 효과인 5명보다 크다. 수출 호조가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경기 활력을 북돋는 데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수출 증가세에도 올해 설비투자는 1분기(-2%), 2분기(-2.1%)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였다. 설상가상으로 2분기에는 고용 유발 효과가 큰 건설투자(-1.1%)도 1분기보다 쪼그라들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예전만큼 수출이 내수에 미치는 낙수효과가 크지 않다”며 “정부가 수출에 중점을 둔 경제정책을 내수 쪽으로 과감하게 더 틀어야 한다”고 했다.

◇고금리 가계 부채가 내수 발목

고금리 가계 부채가 내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은행권 가계 대출 평균금리가 연 5%대 안팎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빚 자체도 늘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18일 기준 712조1841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3조6118억원 늘었다. 지난달 5조3415억원 늘면서 2021년 7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번 달 들어서도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동시에 한계에 몰린 대출자도 적지 않다. 올해 1분기 말 2금융권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4.18%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3개월 사이에 1%포인트 뛴 8년 9개월 만의 최고 기록이다. 은행권 연체율도 0.54%로 9년래 최고점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