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건축박람회 '2024 코리아빌드위크' 벨류맵 부스에서 참관객들이 농촌체류형쉼터로 제작이 가능한 모듈식 주택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오는 12월부터 농부들이 자신이 보유한 농지 위해 1.5룸 ‘농촌 체류형 쉼터’를 조성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농막에서는 취사와 취침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쉼터에서는 부엌을 만들어 밥을 짓거나 침실을 분리해 잠을 자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주말농부들 사이에선 쉼터에서 편하게 ‘5도2촌’(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2일은 농촌에서 머무는 방식)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쉼터와 주차장 등 합쳐 23평 규모...텃밭까지 ‘나만의 농촌’ 꾸릴 수 있어

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촌 체류형 쉼터 도입 방안에 따르면, 쉼터는 가설건축물 형태로, 본인 소유 농지에 내부 면적 10평 규모로 조성할 수 있다. 한 번 지으면 3년간 사용할 수 있고, 3번 연장해 최대 12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 때를 대비해 처마나 데크도 외부에 별도로 설치할 수 있고, 화장실을 위한 정화조도 마련할 수 있다. 주말농부들이 보통 자가용을 끌고 텃밭을 찾는 점도 감안해 주차장 1면도 별도로 둘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감안해, 10평짜리 쉼터에 데크와 처마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짓는다면 23평가량(76.6㎡)의 농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다만 정부는 비농업인이 쉼터를 별장처럼 이용하는 행위를 막고자, 쉼터와 부대시설들이 차지한 면적의 최소 두 배 이상의 농지에서 실제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기로 했다. 경작용 농지까지 포함하면 46평은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쉼터는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이라 부동산 관련 보유세(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취득세와 재산세는 내야 한다. 또 화장실과 취사시설을 갖추기 때문에, 수질을 관리하는 지역이나 경사가 가파른 곳 등에는 쉼터를 지을 수 없다.

◇농막 절반이 ‘불법’...쉼터로 양성화 유도한다

정부는 이번에 쉼터를 도입하면서 불법적으로 조성된 기존 농막들도 양성화한다는 방침이다. 농막은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휴식을 취하고, 필요한 농자재들을 갖춰놀 수 있도록 설치한 영농 편의시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농막에서 불법적으로 음식을 해먹거나, 별장처럼 꾸며놓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난 2022년 감사원 감사 결과 전체 농막의 52%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거나 위장전입에 활용되는 등 불법 소지가 컸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불법 농막을 일제히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야간 취침 금지, 농지 규모별 농막 규모 차등화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주말농부들의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며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정부는 향후 3년 안에 불법 농막을 쉼터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기간 내에 불법 농막을 쉼터로 설치 신고를 하면 각 지자체에서 쉼터를 지어도 되는 장소인지 등을 확인하고, 등록해주는 방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 합법적인 농막도 입지 기준 등을 만족하면 쉼터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는 기존 농막의 활용도도 높이기 위해 데크와 정화조를 6평 면적 기준에서 제외해주고, 주차장도 차량 1대용 면적까지는 허용해주기로 했다. 농막의 휴식 기능을 살리고,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생리적 활동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취지다.

◇'쉼터용 주택 팝니다’ 벌써부터 시장 열려

농촌 체류형 쉼터 도입 소식을 두고 주말농부를 꿈꾸는 이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농막 등 이동식 주택을 만드는 이찬호 이동주택미루 대표는 “엊그제도 주말농부가 꿈이라는 부부가 찾아와, 쉼터 설치가 허용된다는데 어떻게 되느냐고 문의를 해왔다”며 “업계에서는 서로 10평 규모의 쉼터 디자인을 이쁘게 뽑으려고 경쟁 중이다”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벌써부터 쉼터용 주택을 광고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정부는 향후 법 개정을 통해 각 지자체에서 쉼터 단지를 조성해 시민들에게 임대해주는 방식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시민들이 모여서 함께 농사를 짓고, 농촌 주민들과 교류하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이나 일본의 ‘시민농원’과 비슷한 구조다. 지자체가 지정한 농촌 융·복합 단지 등에서는 가설건축물이 아닌 건축물 형태의 쉼터를 조성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투기 목적의 농지 활용 등을 경계해, 민간 업체가 대규모로 농지를 사들여 쉼터 단지를 조성한 뒤 임대해주는 것은 금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