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도로변에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의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취업자 4명중 1명꼴로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였다. 주 36시간은 일반적으로 근로 조건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단시간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34)씨는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둔 뒤 틈나는 대로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포장하거나 분류하는 단기 아르바이트가 이씨의 주요 수입원이고, 강아지 산책시키기와 고양이 돌봐주기 등 간단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일주일에 30시간가량 일한다고 한다. 그는 “풀타임 알바를 하기엔 장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부담이 컸다”며 “일단 필요할 때마다 생활비를 벌면서 나만의 운동복 브랜드를 만들려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이 필요한 시간만큼만 사람을 고용하고, 근로자는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가 확산하고 있다. 주 5일 40시간씩 회사에 붙어 있는 정규 근로자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빠르게 느는 것이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에 주당 36시간보다 적게 일한 단시간 근로자는 680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7000명 늘었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0년 이후 7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달 전체 근로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23.6%까지 뛰었다. 국내에서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은 단시간 근로자인 셈이다. 일주일에 1~17시간 일한 ‘초단시간 근로자’로 범위를 좁혀도 255만7000명이나 됐는데, 이 역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그래픽=양인성

◇취업난에 ‘생계형 긱 워커’ 되는 청년층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에 해당하는 ‘긱 워커(gig worker)’ 증가세는 특히 3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지난달 15~29세와 30대 단시간 근로자는 1년 전보다 각각 5만5000명, 7만명 늘었다. 30대 이하만 12만5000명 늘어난 것이다. 60대 이상도 13만2000명 증가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 졸업반 김모(26)씨는 평일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취업을 준비하고 주말 이틀간은 편의점에서 14시간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김씨는 “취업하려면 2~3년은 준비해야 하는데, 이 기간에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그때까지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년층 긱 워커의 증가는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는 현상과 관련 있다. 기업들이 신입 사원 공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면서 양질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목표하는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라도 벌고자 단시간 근로를 선택하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로 1년 전(10.4개월)보다 한 달가량 늘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50%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며 “결국 일해야 할 청년 절반 정도는 사회생활의 시작부터 저숙련 단기 일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더 일하고 싶어도 구인 정보 부족한 고령층

청년층과 더불어 긱 이코노미를 이끄는 주축인 고령층은 이미 대다수가 단시간 근로자다. 지난달 기준 70세 이상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135만6000명이었던 반면, 36시간 이상은 71만8000명에 불과했다. 정부에서 확대해 온 노인 일자리가 대부분 하루에 3~4시간 일하는 데다, 고령층이 많이 진출하는 요양 보호사도 보통 하루에 한 집당 3시간씩 방문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려는 청년층 긱 워커와 달리, 고령층 사이에선 “일자리 정보가 부족해 원하는 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나온다. 경기 부천시의 한 학원에서 주 6일 아침 3시간씩 청소하는 김모(72)씨는 “낮에도 일자리만 있으면 일하고 싶지만 정보가 없다”며 “학원 청소 자리도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받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 능력이 없는 고령층은 빨리 은퇴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탄탄히 해주고, 근로 능력과 의욕이 있으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기업 등이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을 주로 고용하는 방식의 경제 형태.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에서 즉석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gig)’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과거 배달, 대리운전 등에서 최근 컨설팅·전문직 등으로도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