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주요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0%대 기준금리를 등에 업고 극심한 아파트 추격 매수 경향을 보였던 지난 2021년보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지난 2분기 주택 가격 상승 신호에도 불구하고, 원래 7월 시행 예정이었던 대출 규제를 두 달 미룬 금융 당국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집값 급등세, 대출 급증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당국은 남아 있는 각종 규제 카드를 총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5대 은행 주담대 최대 폭 증가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7월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59조7501억원으로 한 달 만에 7조5975억원 늘었다.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6년 이후 최대 월간 상승 폭이다. 이런 증가세는 이달도 여전하다. 이달 22일까지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6조1456억원 늘었다. 이 속도면 7월에 세웠던 월간 최대 증가 기록을 한 달 만에 갈아치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음 달 대출 한도를 추가로 줄이는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대출 ‘막차 수요’가 여전한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연 0.5~0.75%였던 기준금리 아래서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절정이었던 2021년 하반기보다 더 거세다. 예를 들어 A은행은 7월 주택담보대출 신규 대출액이 2조9873억원이었는데, 이는 같은 은행의 2021년 8월 대출액(1조8074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다.

당시보다 고가 주택 중심 거래가 빈발하는 것도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아파트 거래 가격 중 3억원 이하 거래 건수의 비율이 31.5%였는데, 올 들어 8월 22일까지 17.3%에 그친다. 대신 9억원 초과 거래 비율은 2021년 15%에서 올 들어 23.7%까지 늘었다.

◇대책 미적댄 당국 책임론 대두

시장에선 금융 당국의 가계 부채 대책이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6월 주택 가격 상승 경고음이 켜졌을 때, 예정대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를 7월에 시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당시 6월 넷째 주까지 14주 연속 상승했고,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0.4로 지난해 9월(90.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 시행일(7월 1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9월로 두 달 미뤄버린 것이 시장에 ‘정부가 부동산 상승세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시그널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이처럼 대출 규제를 미룬 채, 다른 한쪽에서는 대출을 조이겠다고 나서는 정책 엇박자도 발생했다. DSR 규제 시행 연기 후에 대출 급증세가 나타나자 금융감독원은 부행장 간담회를 소집하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에 은행들은 각개격파 식으로 주택담보대출 가산 금리 등을 올리면서 대응했다. 이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대출 상환 부담이 느는 피해를 입었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5일 TV에 출연,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대출) 물량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은행 자율성을 고려해 개입을 적게 했는데, 앞으로 더 개입을 세게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의 대출 급증세를 금융 당국의 정책 실패라기보다는, 은행의 월별·분기별 관리 실패로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 당국은 뒤늦게 각종 규제 카드를 총동원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최대 100%까지 해 주는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80% 이하로 내리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증을 적게 해 주면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수)’ 등에 쓰일 수 있는 전세대출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자만 내고 원금은 갚지 않는 거치 기간을 없애, 대출 심리를 묶는 방안도 유력한 검토 대상이다. 그래도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담보인정비율(LTV) 강화 카드까지 등장할 수 있다. 집값에 비례해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를 규제하는 LTV를 낮춰 대출 가능액을 인위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