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상점가 폐업 상가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강원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박모(29)씨는 지난 2월 빚더미를 감당하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2019년 말 자신의 작은 식당을 차릴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개업 3개월만에 코로나 사태가 덮쳤다. 한푼 두푼 늘어난 대출금이 어느새 2억원이 됐다.

손님은 없는데 금리는 득달같이 올랐다. 처음엔 월 100만원 정도이던 이자가 작년 말엔 150만원 정도로 불어났다. 식당 문을 밤 11시까지 더 열고,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던 박씨는 포기하고, 새출발기금을 신청했다. 새출발기금은 정부가 2022년부터 도입한 자영업자·소상공인 전용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다. 원금 74%를 감면받은 박씨는 “남은 빚 다 갚으면 월급쟁이로 살고 싶다”고 했다.

장기화한 고금리와 내수 부진이 자영업자를 절벽으로 몰고 있다. 30일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박씨처럼 새출발기금을 신청한 자영업자는 1만9646명으로, 지난해 연간 신청자 수(1만9013명)를 추월했다. 신청자 수도 급증 추세다. 올해 1월 1965명이었는데, 지난 7월 3477명으로 늘었다. 작년 7월(1549명)의 2.2배다.

새출발기금 대상자로 확정되면 5억원 한도의 담보 없는 원금 중 최고 8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감면을 받으면 일정 기간 금융권 추가 대출이 어렵고, 신용점수가 추락한다. 말이 좋아 새출발이지, 새출발기금은 빚더미에 깔린 자영업자가 선택하는 최후 수단으로 인식된다.

전체 자영업자의 빚 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여전히 대출을 늘리고 있다. 경기는 가라앉아 있는데 금리·인건비·임대료 등 오르지 않은 것이 없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5조9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늘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2년 2분기 말 0.5%에서 올해 1분기 말 1.52%까지 확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 대출 연체율이 0.49%에서 0.84%로 0.35%포인트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빠른 속도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은 “코로나 때 자영업자들에 금융 지원으로 일관했던 것이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에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괜찮은 임금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만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새출발기금

새출발기금이란, 소상공인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10월에 도입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다. 원금을 감면하거나, 상환 기간을 늘려주거나, 이자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채무 조정을 해준다. 채무 조정을 위해 최대 15억원(담보 10억원+무담보 5억원)까지 대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