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질환이나 치매, 알코올중독 등이 있는 조부모나 부모, 형제 자매를 돌보는 10대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 돌봄 청년)’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만 7만명을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 케어러는 부모 대신 생계비를 벌어오는 소년·소녀 가장 역할뿐 아니라 몸이 불편한 부모·조부모의 간병까지 도맡느라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미래를 저당 잡힌 청소년을 뜻한다.

20일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의 ‘가족 돌봄 청년 기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과 경기 지역 9~18세 영 케어러는 7만885명으로 집계됐다. 이 연령대 주민등록인구(203만4941명)의 3.5%다. 성인이 된 20·30대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가족 돌봄 청년은 12만347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영 케어러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국내 첫 추산 결과다. 김 부연구위원은 9~39세 가구원이 있는 기초생활수급 가구(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구) 가운데 1인 가구와 부부 가구 등을 제외했다. 이 가운데 장애인이나 70세 이상 노인, 중증 질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40세 이상이 있는 가구, 부모 없이 몸이 불편한 형제·자매를 돌보는 경우 등을 추려냈다.

영 케어러는 198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부모 등에게 무보수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10대 영 케어러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학교나 지자체 등에 잘 알리지 않기 때문에 ‘숨겨진 집단’, ‘잊힌 최전선’으로 불린다. 영국·호주 등은 영 케어러를 사회문제로 보고 생계비와 돌봄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선 정부 차원의 영 케어러 규모 공식 추산치나 지원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국제 학계가 한국의 영 케어러 대응 수준을 1~7단계 중 최저 수준인 7단계(무반응 국가)로 분류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