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자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한국 경제의 위기 진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금융 당국 집계로는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이 132조원쯤이고, 새마을금고 등까지 합하면 부동산 PF 노출액(익스포저)은 약 230조원에 달한다. 한국에서 부동산 PF가 왜 반복적으로 위기 진앙으로 꼽히는 걸까. 그 근원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부동산 PF는 금리 인하기를 맞아 문제가 잦아드는 걸까. 이런 의문들을 지난 18일 이보미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재무학 박사)과 만나 풀어봤다. 이 박사는 “한국 부동산 PF 시장에선 시행사가 총사업액의 3%쯤밖에 안 되는 자기자본을 들고 건설사나 증권사 등 2금융권의 보증을 등에 업고 자기 몸집의 30배가 넘는 사업을 할 수 있다”며 “대출을 내주는 금융회사들이 보증만 믿고 사업성 평가에 신경을 덜 쓰면서 모럴 해저드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부동산 PF가 끊이지 않고 위기의 진앙으로 거론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 한국형 부동산PF?

- 우리나라 부동산 PF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나.

“원래 글로벌 금융 시장의 PF는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부동산 프로젝트의 사업성에 기반해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준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사업주가 바뀌어도 프로젝트가 같다면 대출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프로젝트가 중심이 아니라 시공사, 즉 건설사가 중심이다. 보증이나 책임 준공 확약 등을 선 건설사를 보고 대출이 나간다. 글로벌 표준과 한국형 부동산 PF가 다른 결정적 차이다.”

- 다른 차이점도 있나.

“부동산 프로젝트는 토지 매입, 시공, 분양 등 3단계로 나뉜다. 해외의 디벨로퍼, 즉 부동산 개발사는 모든 단계를 주도한다. 그런데 이런 디벨로퍼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시행사는 모든 단계를 끌고 가지 않는다. 단지 토지 매입만 주도한다.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니다. 한국형 부동산 PF는 자기자본이 3%쯤이다. 1000억원 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 사업이라면, 시행사가 자기 돈 30억원만 갖고 진행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토지 매입을 위해 건설사 보증뿐만 아니라 증권사 등 2금융권의 신용 보강, 대출이 들어간다. 게다가 선분양으로 분양받은 사람들 돈으로 건설비를 충당한다. 고위험 개발 사업에서 별로 큰 위험을 지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 국내 부동산 개발업으로 등록한 곳만 2500개가 넘고, 미등록 업체까지 따지면 6만여 개쯤 난립하는 이유다.”

- 이런 현상을 경제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모럴 해저드, 즉 도덕적 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럴 해저드는 보험이 있으면 보험 가입자가 위험한 행동을 덜 피하려고 해서 안 나가도 되는 보험금이 나가게 된다는 개념에서 왔다. 그런데 한국형 부동산 PF는 사업성이 안 좋은 프로젝트까지 각종 보증이 붙어서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떼일 것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대출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PF가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다른 시장 참가자를 희생시켜 이득을 얻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는 이런 모럴 해저드가 있어도 PF 시장이 굴러간다. 하지만 부동산 값이 오를 것이란 믿음에 조금만 충격이 오면 흔들리게 된다.”

◇ 반복되는 위기설, 왜?

- 한국형 부동산 PF는 왜 등장했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시행사와 시공사의 분리 영향이다. 그 전엔 건설사가 토지 매입, 시공, 분양을 도맡아 했다. 건설사가 빚으로 땅을 사다 보니 부채비율이 800%를 넘기도 했다. 그런데 외환 위기로 정부가 부채 비율을 200%로 낮추라고 했다. 그래서 토지 매입이 시행으로 분리됐다. 당시 건설사 한 부서가 분리돼 시행사가 되기도 했다. 이러니 시행사 자본이 많을 리 없고, 건설사가 보증을 서는 구조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지급보증 선 건설사가 줄도산을 하고 건설사 지급보증도 부채로 잡는 새로운 회계 기준이 도입됐다. 그러자 건설사가 책임 준공 확약이란 새로운 보증을 주기 시작했고, 증권사 등 2금융권이 신용 보강이라며 추가 보증을 제공했다.”

- 부동산 PF가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이다.

“경기가 고꾸라질 때 부동산 값이 하락하면 다른 나라보다 심하게 부동산 개발 쪽에서 문제가 터지기 때문이다. 작년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전년 대비 부동산 값 하락폭은 7.3%인데, 같은 기간 하락폭이 6~8%로 우리와 비슷한 나라는 스웨덴, 덴마크, 캐나다 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부동산발 위기 얘기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작년 7월 부동산 PF 대출 부실 우려로 인한 새마을금고 대규모 예금 인출이 생겼고, 올해 1월엔 시공능력 순위 16위 중견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도 했다.”

◇ 부동산 PF의 미래

- 금리 인하기엔 부동산 PF 문제는 사라질까.

“금리 인하기엔 부동산 PF가 괜찮아 보일 수 있다. 지금도 금융 당국이 ‘옥석 가리기’를 한다지만 금리가 떨어질 것이니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사업장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만약 예상만큼 금리가 빠르게 안 내려가면 부실이 커지고 금융시장까지 위험이 퍼질 수 있다. 부동산 PF의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구조가 안 만들어지면 언제든 문제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 부동산 PF가 위기 진앙이 되는 걸 막으려면.

“지난 6월 말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의 단계별 연체율을 보면, 토지 매입을 위한 브리지론이 11.08%고 시공 단계의 본PF가 2.5%다. 토지 매입 단계의 위험성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해외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자기자본은 20~30%인데, 그 이유는 토지 매입 자금이 전체 사업비의 30%쯤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고위험의 토지 매입 단계는 자기자본으로 하게 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PF를 프로젝트 파이낸싱답게 만들어야 한다. 건설사, 신탁사, 증권사 등의 신용 보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선 사업비 20~30%를 자기자본으로 마련해 토지 매입”

이보미 박사는 “미국에선 사업비의 20~30%를 자기자본으로 마련해 토지 매입 자금으로 쓴다”며 “선분양 자금도 금융회사에 예치해 놓을 뿐 사업비로 쓰지 않는다. 분양이 잘돼서 사업성이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부동산 사업 주체가 위험을 분담해서 부동산 개발이 부실화돼도 소비자나 금융회사에 위험이 크게 번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어떻게 부동산 개발 사업비를 마련하나.

“통상 평판 좋은 디벨로퍼가 시행자가 돼서 재무적 투자자를 모아 자기자본을 만든다. 재무적 투자자는 지분 투자니까 잘못되면 돈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정말 수익성이 좋은지 따져보고 투자한다. 전체 사업비 20~30%를 이렇게 마련해 토지 매입 자금으로 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토지 매입과 건설 단계에서 쓰는 자금이 분리돼 있다. 부실이 전이될 위험이 적다.”

―외국도 한국처럼 분양받은 사람 돈을 사용하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도 선분양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있다. 그런데 분양받은 사람 돈을 건설비에 쓰지 않는다. 통상 5~10%인 계약금은 금융회사에 예치한다. 미국의 분양형 콘도미니엄 사업은 건설비 대출 때 대주단이 50% 이상의 선분양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신 선분양 비율이 높을수록 대출 금리가 낮아진다.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좋다는 걸 증명하려고 분양이 잘된다는 걸 보여주는 용도로 쓴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부동산 PF발 금융 위기는 적다.

“디벨로퍼들이 부동산 시장이 꺾여도 계속 개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자본이 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진국이라고 부동산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취약 계층에 대출을 무리하게 늘려서 생겼다. 시중에 돈은 많은데 갈 데가 부동산밖에 없을 때 부동산 거품이 생길 수 있는 건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부동산에 너무 쏠리지 않도록 계속 모니터링해야 한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시장에서 한쪽이 정보나 자신만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다른 쪽을 희생시켜 이득을 취하는 걸 가리키는 경제학적 개념이다. 도덕적 해이로 번역한다.

☞브리지론과 본PF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는 크게 브리지론과 본PF로 나눌 수 있다. 브리지론은 시행사가 토지 매입비와 초기 운영비 등을 조달하는 것이고, 본PF는 시공 단계에서 건축비를 조달하는 것이다.

:이보미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재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금융연구원 기업부채연구센터장을 거쳐 올해 7월부터 자본시장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최근 주요 보고서로는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의 문제점과 시사점’, ‘우리나라 부동산 PF 위험에 대한 고찰 및 시사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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