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정책은 탈(脫)원전이 아니라 무(無)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이 돼야 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이 함께 가야 합니다.”(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조선일보가 17일 서울 중구 ‘라온’에서 개최한 ‘에너지산업 컨퍼런스’에서는 코로나 이후 에너지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구체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원전 정책 방향, 배터리 주도권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각축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전력시장 개편 방향 등이 논의됐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 사태에 따라 철저한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예년과 달리 관객 없이 토론자 7명만 참석했다. 대신 토론 장면은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당초 참석할 예정이었던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영상 축사를 보내왔다. 성 장관은 “친환경 저탄소라는 세계적 추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에너지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그린 뉴딜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산업 지원을 육성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에너지섬’… 에너지 안보 위해 원전 필요
이날 토론에서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원전의 역할이 부각됐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세계적인 학술지 ‘랜싯’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은 에너지원이 원자력”이라며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 원전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도 원전을 짓고 있다”며 “외부로부터 전력을 받을 수 없는 ‘에너지섬’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24시간 태양이 떠있지 않기 때문에 소형 원전으로 보조 발전을 하자'고 제안했다”며 “카이스트에서 연구 중인 마이크로 모듈 원전 등 안전한 원전을 활용해서 미래 에너지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박호정 고려대 교수도 “스웨덴과 덴마크가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는 대신 이웃 나라인 에스토니아에서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더 많이 수입하면서 유럽 전체적으론 탄소 배출이 늘어났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보다 보니, 미세 먼지 사태가 심각할 때에도 원전이 아닌 화석연료 발전을 늘리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환경성을 고려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가 가진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해서 안정적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전력 시장 개편해야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한국의 경직적·독점적 전력 시장을 개편해야 한다는 데 토론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전력 산업은 중앙집권적인 규제와 한전의 시장 독점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라며 “에너지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소매 시장을 개방해서 다양한 결합 상품들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전기료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 교수는 “연료비에 따라 전기 요금이 조정되지 않으면 에너지 산업의 발전도 어렵고 재생에너지 확대도 힘들다”며 “친환경 비용을 전기료 고지서에 별도로 표기해서 소비자들도 기후변화 대응 비용을 알게 해야 한다”고 했다.
주력 산업으로 뜨고 있는 배터리 시장의 성장 전망도 제시됐다. 세계적 에너지 시장 조사기관인 IHS마킷의 김세호 수석연구원은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1%씩 성장할 것”이라며 “배터리 시장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도 “21세기는 배터리의 세기로, 배터리 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