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정부가 발의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우리 기업들의 핵심 기밀 유출과 각종 소송 남발 같은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결국 우리 경제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치명적”이라며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에 스파이 이사를 심으려다 실패했는데, 이 법이 통과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한국 기업이 투기 자본과 경쟁사들의 먹잇감이 돼 기업 비밀이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를 주주들이 뽑은 이사 중에서 선임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물로 따로 뽑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다 합쳐서 3% 이내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된다. 3% 이하의 지분을 가진 투기자본, 외국계 기관들이 세를 합하면 얼마든지 감사를 겸직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엘리엇은 현대차 지분 2.9%를 들고, 중국 기업이 최대 주주인 수소연료전지 회사 ‘발라드파워시스템즈’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당시 엘리엇의 제안은 15%대 지지를 얻는 데 그쳐 무산됐다. 그러나 만약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상황이었다면 엘리엇이 추천한 ‘스파이 이사’는 지금 현대차 이사회 활동을 하며, 세계 최고 수준인 현대차 수소연료전지 기술에 접근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 외국인 지분율은 30%가 넘는데 당시 외국인 주주의 절반이 초고배당을 받아주겠다는 엘리엇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이사회 개입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확보한 국내 기업이 300여곳에 달해, 기관투자자 몇 곳만 모으면 친정부 인사를 이사로 선임할 수 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법학대학원장)는 “주식회사에서 이사 선임권을 주주에게 준 것은 잘못된 이사를 선임했을 때 주주에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개정안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 밖에 ‘다중대표소송제’(상법),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공정거래법) 등은 기업들의 소송 비용을 증가시켜, 제품 가격에 결국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이 개정되면 모회사 지분 0.01%만 보유해도 수십 곳의 자회사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공정위가 아니어도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을 고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