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가 타당하지 않다는 내용의 감사 보고서를 의결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정당성도 상처를 입게 됐다.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공약 수립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도 각종 무리수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무리한 정책 집행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였다. 당시 원전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정책 집행 라인에 있던 인물들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이번 감사에서 강도 높은 감사를 받았다. 감사원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선 검찰에 형사 고발하고, 당시 원전 폐쇄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한 산업부·한수원 관계자 3~4명 등에 대해서도 해당 기관에 징계 권고를 통보할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15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월성 1호기 감사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의 방해 행위가 있었다고 밝힌 데 따른 후폭풍도 이어질 전망이다. 감사를 방해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사법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
◇탈원전 무리한 집행의 대표 사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탈원전 정책의 상징이 된 월성 1호기는 당초 설계 수명이 2012년 11월까지였으나, 한수원이 7000억원을 들여 전면 개·보수를 마친 후 2022년 11월까지 연장 운영할 예정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수원은 돌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인 6월 15일,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은 예정에 없던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이때 한수원은 이사들에게 “정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정책을 수립하고, 공문(公文)으로 이행을 요청했다”며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보여주지도 않은 채 표결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후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고의로 축소·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이사회 석 달 전인 2018년 3월 한수원이 작성한 자체 분석 보고서에는 ‘계속 가동이 즉시 정지했을 때보다 3707억원 이득’이라고 돼 있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5월 경제성 평가 용역을 맡은 삼덕회계법인의 중간 보고서에선 계속 가동 이득이 177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산업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이 모여 회의한 뒤에는 계속 가동 이득이 224억원으로 더 쪼그라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의 기준이 되는 원전 이용률과 전력 판매 단가 전망치는 계속해서 낮춰졌다.
그럼에도 계속 가동이 이득이라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지만 한수원은 결국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한수원의 영구정지 신청을 받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4일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허가’를 의결했다. 한수원은 이후 월성 1호기의 원자로에 들어 있던 연료를 빼냈고, 해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 집행 주역들… “대통령 공약 수행했을 뿐”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자 수십 년간 원전 건설에 앞장섰던 산업부 관료 조직이 앞장서 탈원전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2018년 6월 당시 산업부의 원전 정책 집행 라인은 백운규 장관, 박원주 에너지자원실장, 문신학 원전산업정책관, 정종영 원전산업정책과장으로 이어진다. 이들 모두 이번 감사원 감사 대상이다.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신인 백 장관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탈원전 공약 수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6일 본지 통화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일부 관계자는 “대통령의 공약을 성실하게 수행한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탈원전 실무를 맡은 주역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다. 정 사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정 사장은 15일 국회 국감에서 “감사원에서 저한테 합당한 책임을 물으면 당연히 (법적인) 책임을 제가 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