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감사원 감사 결과에는 대통령의 눈치를 본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위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내용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보좌관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던진 전후로 파악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한 글을 보고 월성 1호기 폐쇄 계획을 물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질문은 청와대 참모와 산업부 과장을 거쳐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에게 보고됐다. 백 전 장관은 이에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산업부는 2018년 초 월성 1호기 폐쇄를 차일피일 미루는 한수원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2018년 1월 29일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한수원 사장 직무대행을 만나 “월성 1호기 정책 방향을 3월 말까지 수립해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해 2월 6일, 3월 2일과 19일에는 산업부 A 과장이 한수원 간부를 만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산업부는 특히 2017년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 선포 후 1주년이 되는 2018년 6월 19일 이전에 폐쇄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2018년 3월 2일 산업부 A 과장은 한수원 측에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1주년 이전에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며 “산업부에서도 관심이 많은데 한수원 직원들이 인사상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사실상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한수원 조치가 늦어지자 산업부는 3월 19일 한수원 측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시한까지 통보한다. 산업부 A 과장은 한수원 측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6월 19일 탈원전 선포 1주년 행사와 관련해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으니, 3월 말까지 내부 방침을 결정해 보고하기 바란다”고 했다.
한수원이 삼덕회계법인에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의뢰한 후에도 산업부는 지속적으로 회계 법인과 한수원을 압박해 경제성을 낮추도록 했다. 산업부가 2018년 5월 2일 작성한 ‘에너지 전환 후속 조치 추진 현황’에 따르면 “삼덕회계법인에 경제성 저하 요인을 적극 설명하겠다”고 적혀 있다. 같은 달 4일과 11일 산업부는 삼덕회계법인과 면담하면서 경제성을 낮추도록 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의 기초가 되는 원전 이용률과 전력 판매 단가를 낮추도록 했다. 이에 따라 회계법인은 원자력 전기의 판매 단가를 ㎾h(킬로와트시)당 60.76원에서 51.52원으로 낮췄다. 원전 이용률도 삼덕회계법인은 최초 85%를 상정했지만, 산업부가 “향후 이용률이 30~40%로 전망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70%로 낮췄다. 그러나 70% 이용률을 적용한 경제성 평가에서 계속 가동하는 것이 즉시 폐쇄보다 1778억원이나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회계법인은 5월 11일 산업부·한수원과 회의 후 60%로 다시 낮췄다. 한수원은 곧바로 그해 6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감사원은 이런 사실들을 다 살펴본 후에도 원전 이용률을 60%로 낮춰 잡은 것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원자력계에선 “월성 1호기의 재가동 첫해인 2015년 이용률은 95.8%였고, 미국 원전 96개의 평균 이용률도 92%에 달한다”며 “감사원이 경제성 왜곡 과정의 핵심 사안 중 하나에 대해 면죄부를 준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탈원전에 반대해 온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할 때의 제1 논거가 경제성 부족이었다”며 “감사 결과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된 것이 드러난 만큼, 조기 폐쇄 결정은 즉시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