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옛 현대상선)은 지난 18일 북미 서안 항로(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컨테이너선 2척을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HMM이 부산~LA 항로에 임시편을 투입한 건 지난 8월과 9월에 이어 올해 들어 세 번째다. HMM 측은 “국내 수출 기업들이 배를 구할 수 없다고 호소해 코로나 사태 이후 운영을 일부 중단했던 선박을 북미 노선에 긴급 투입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컨테이너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얼어붙었던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물건을 실어 나를 배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후 국내 선사들의 선복량(적재 능력)이 급감하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의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들은 보유 컨테이너선을 중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수출 기업 “선박 못 구해” 발 동동
지난달 24일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선주협회가 개최한 ‘선주·화주 간담회’. 이 자리에서 삼성SDS·판토스·현대글로비스 등 기업들은 ‘선박 품귀 현상’을 호소하며 컨테이너 선박의 긴급 투입을 요청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들도 늘어난 물량을 소화할 선박을 구하기 어려운데, 수출 중소기업들엔 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선사들은 코로나 사태 직후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선박 운용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프랑스 해운 조사 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5월 당시 운항이 중단된 컨테이너선은 524척으로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11.3%에 달했다. 하반기 들어 중국 공장 가동이 정상화되고 미국도 셧다운(봉쇄) 조치를 해제하면서 물동량은 코로나 이전 상황을 거의 회복했다. 하지만 수리·정비에 들어간 선박을 다시 운항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글로벌 선사들은 물동량이 급증하는 중국~미국 노선에 선박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 항구에서 집중적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이 선사들엔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럴 때 한진해운 있었더라면..."
국내 수출 기업들은 선박 부족뿐 아니라 ‘운임 급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를 보면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서안에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보내는 운임은 지난해 10월 1313달러였다. 하지만 1년 만인 현재(지난 16일 기준) 운임은 3841달러로 치솟았다. SCFI는 2012년 7월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중국에 임시 선박을 투입하는 글로벌 선사들이 있지만, 부산발(發) 임시 선박을 투입하는 회사는 국적 선사인 HMM뿐이다. 수출 기업 관계자는 “HMM은 국적 선사로서 책임감을 갖고 국내 수출 기업들의 요청을 받아 임시 선박을 투입했다”며 “하지만 HMM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선박 품귀 현상이 2016년 한진해운 파산의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해운은 파산 전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 기업이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한진해운이 거론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게 “요즘 세계 해운업 시장이 활황”이라며 “4년 전 한진해운 파산은 산은이 근시안적인 태도로 너무 쉽게 해운업 구조 조정을 결정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산업은행 등이 지원한 HMM은 지난 2분기에 21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