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45세로 ‘삼성호(號)’의 선장으로 등극한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당시 삼성은 매출 10조원이 채 안 됐고, 국내에선 현대와 대우에 뒤진 재계 3위였다. 글로벌 시장에선 존재감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세계 초일류’란 목표를 내걸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최고’를 추구했던 이병철 선대회장의 ‘제일주의’ 정신을 ‘글로벌 제일주의’로 확장한 것이다.
이후 29년 만에 삼성그룹은 매출 약 387조원(2018년 기준)으로 39배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소니와 산요를 꺾고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의 초일류에 대한 집념은 결국 삼성전자의 반도체·TV·휴대폰을 세계 1위로 이끌었다. 1990년대 시작한 자동차 사업은 외환 위기로 좌초했지만, 금융·건설·서비스 산업 등 대부분의 계열사가 저마다 약진해 삼성이 보유한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2012년 26개에 달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이 회장 평생의 화두였다. 그는 2002년 6월엔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며 10년 위기론을 설파했다. 그러면서 “제트기가 음속(마하)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부터 엔진·소재·부품을 다 바꿔야 한다”며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마하 경영’을 제시했다. 2002년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소니를 앞지른 기념비적 해였지만, 그는 현실 안주를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