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 부회장의 딸 원주씨, 아들 지호씨가 25일 오후 4시 54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로 이동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4시 54분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현대자동차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장례식장 정문 앞에 정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고(故) 이건희 회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왔다. /박상훈 기자

이어 아들·딸 함께 출입 QR코드를 발급 받고, 체온 측정을 한 뒤 빈소가 차려진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이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다른 유가족들도 빈소를 찾았지만, 이 부회장과는 달리 취재진의 눈에 띄지 않는 지하 주차장 등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건물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4시54분쯤 고(故) 이건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앞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박상훈 기자

앞서 오후 3시 40분에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부인 김희재 여사, 자녀 이경후 CJ ENM 상무,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재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조카다. 1시간 30분 동안 빈소에 머문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자, 가족을 무척 사랑하셨고 큰 집안을 잘 이끌어주신,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일찍 영면에 드셔 황망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25일 오후 정몽규(왼쪽) HDC 회장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이 고(故) 이건희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박상훈 기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과 정몽규 HDC 회장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정몽윤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우리나라 재계의 큰 거목이셨다”고 말했다.

◇文대통령, 비서실장 통해 “명복 빈다” 전해

이날 오후 7시25분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노 실장은 10여분간 빈소에 머물며 문재인 대통령의 애도 메시지를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노영민(가운데)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호승(왼쪽)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박상훈 기자

문 대통령은 노 실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키워냈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며 “그분이 보여준 리더십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위기극복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큰 귀감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오후 9시45분에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지사는 “조문 말씀 드리러 왔다”며 “한 시대의 별이신데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기업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가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고인의 넋을 기리는 일이자 우리가 짊어져야할 과제”라고 썼다.

◇고인 뜻 따라 간소한 가족장

이건희 회장은 이날 새벽 3시59분 장남인 이 부회장과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장례를 총 4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26일 오전 9시부터 입관식을 가진 뒤, 오전 10시부터 조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회장의 빈소에 취재진이 몰려들자, 장례식장 출입문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장례식장에) 실내 50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지하 2층에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