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재계에서는 2014년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청사진을 그렸던 ‘뉴 삼성’ 작업이 더욱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회장은 화학·방위 산업 등 비(非)주력 사업은 매각하고, 시스템 반도체·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바이오 등 신성장 동력 사업에는 대규모로 투자하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 분쟁과 점점 높아지는 글로벌 무역 장벽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데다, 국정 농단 재판에 이어 삼성물산 합병 재판까지 겹쳐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재용의 삼성 시대 본격 개막
이 부회장은 2014년 이 회장이 쓰러진 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온 만큼, 그룹 경영에 당장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이미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통해 공식 ‘총수’에 올랐다. 이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계열 분리를 통해 독자 노선을 걷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당장은 가시적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었던 지난 6년 5개월 동안 삼성그룹을 비교적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일 갈등으로 일본의 부품 소재 산업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자, 곧장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 업계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경영 전면에 나선 직후인 2014~2015년에는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매각하며, ‘잘할 수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6년엔 미국 전장(電裝)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4월엔 133조원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계획을 발표하며 아버지가 키운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비(非)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하겠다(2030년)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기업용 클라우드 시장의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미국의 IBM이 차세대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 생산을 삼성에 맡기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내놓고 있다.
요즘 이 부회장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AI(인공지능) 산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분야 세계적인 석학 영입을 위해 캐나다, 유럽 등의 해외 출장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AI 등 신성장 동력과 관련된 대형 M&A 등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경영 환경과 사법 리스크 등 여전히 첩첩산중
‘이재용의 삼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미·중 분쟁을 비롯한 복합 위기도 글로벌 기업인 삼성을 짓누르고 있다. 핵심인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부문 세계 2위였던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1위 삼성 추격에 몰두하고 있는 데다 반도체 위탁 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삼성과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현재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과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불법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잇단 재판으로 이 부회장은 수시로 법정에 나가야 한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 개인은 물론 삼성 경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