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아버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온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입은 옷이나 타는 차 등이 큰 인기를 얻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고른 차에는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평소 제네시스 G90을 타고, 공항에 나갈 때는 외부 눈을 피하기 위해 기아 카니발도 자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를 그때 그때 바꿔타는 이재용 부회장이 팰리세이드를 택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선 현대차가 판매량이 바닥을 치고 있는 중국에서 재기를 위해 투입한 차가 바로 ‘팰리세이드’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베이징모터쇼에 참가해 대표 모델로 팰리세이드를 공개했다. 팰리세이드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기로 했는데 중국 현지에서 ‘수입차’라는 이미지를 심어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실제 지난 26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국 시장 회복 전략’을 이례적으로 별도 공개하면서 “중국에서 현대차 브랜드력을 높이기 위해 팰리세이드를 모터쇼에서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의 가려운 곳을 콕 집어서 ‘지원 사격’에 나서고, 현대차와 협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현대자동차 에쿠스를 이용하다가 2015년 8월부터 쌍용 체어맨으로 바꿨다. 이 같은 사실은 삼성이 다시 완성차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과 함께 현대차와 묘한 긴장관계를 만들었다. 당시엔 테슬라가 ‘IT업체의 완성차 진출 사례’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삼성전자도 비슷한 전기차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용 스피커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도 이 무렵(2016년)이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1~2년 사이 다시 제네시스 G90으로 차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는 삼성이 완성차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보다는 전장(전자장치) 부품과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자동차 부품 사업을 강화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은 완성차 시장에 진출해 현대차와 경쟁하기보다, 부품사로서 현대차와 손잡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삼성SDI 공장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먼저 초청해 배터리 기술을 소개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과 관련된 전장 부품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SDI의 메인 파트너가 BMW이긴 하지만, BMW는 너무 멀리 있다"며 "배터리 기술이나 전장부품을 계속 개선하고 개발하기 위해선 완성차와 지속적인 교류와 협업이 필요한데, 코로나 사태로 국내에서 같이 하는게 가장 효율적이 됐다. 당장 배터리 공급을 하지 못하더라도 현대차와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가 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이재용의 팰리세이드’에 대한 반응은 인터넷에서 나오고 있다. 자동차동호회에서 ‘팰리세이드가 그런 차였냐’라는 반응과 함께 “내 차도 팰리세이드에요”라며 자랑하는 네티즌들도 등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내에서 언더아머를 폭풍 성장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14년 미국 IT포럼을 방문했을 때 입었던 언더아머 티셔츠가 화제가 됐고, 이후 ‘이재용의 운동복’으로 각인되면서 국내외에서 언더아머의 판매와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언더아머를 수입판매하는 효성의 조현준 회장과 친분이 두텁고, 2016년엔 언더아머와 웨어러블 기기 관련 협업을 위해 언더아머 CEO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입는 옷과 타는 차에는 나름의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