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선언한 ’2050년 탄소 중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에는 탄소 중립을 해야 하는 당위성, 이를 이행하기 위한 개략적 목표만 나열돼 있을 뿐 연도별 탄소 배출량 목표치나 이행 비용 등 추진 전략이라 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원전(原電) 활용 방안은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배제했다. 그러면서도 휘발유세·경유세 등 에너지 세제 개편을 통해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고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소비자에게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느닷없는 탄소 중립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알맹이 없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돈 걷을 생각부터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체성 없이 구호만 요란한 탄소 중립 전략”
홍남기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의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추진 전략'으로 ‘3+1 전략’을 제시했다. 3+1 전략은 ‘경제 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 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 등 3대 정책 방향과 ‘탄소 중립 제도 기반 강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24쪽 분량의 정부 발표 자료에는 이처럼 추상적인 내용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이행 계획은 담기지 않았다.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하는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드는 게 아니라, 탄소 배출을 최소한으로 줄이되 그래도 배출되는 양에 대해선 산림 조성, 탄소 포집·활용·저장으로 상쇄하겠다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일본 등 선진국들도 2050년 탄소 중립 시점에 20~30% 정도의 탄소 배출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날 2050년 국내 탄소 배출량 전망치도 내놓지 못했다.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한 비용 전망도 없었다. 탄소 중립을 위해선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고 신축 건물은 ‘제로 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해야 하며 내연기관차 부품 업체의 폐업·전업에 따른 대규모 실업 발생 등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는 이날 “탄소 중립 이행 과정에서 기업과 국민의 부담 발생이 우려된다”면서도 처방전으로는 “과거 경제개발을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냈으며, 전 국민이 동참한 외환 위기‧국제 금융 위기 극복 저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2050년에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연도별로 탄소 배출량을 얼마씩 줄이겠다는 건지, 구체적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국가 경제의 틀을 바꾸는 중대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비용 전망조차 제시하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기후대응기금 등 국민 부담 증가 방안을 꺼내 들었다. 홍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탄소 중립 이행 재원 마련을 위한) 기후대응기금의 재원은 세부적인 검토를 해 나가야겠지만 친환경에너지세 개편을 통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기후대응기금은 석탄발전 내연기관 자동차 등 탄소 배출 저감에 따라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근로자 지원 등에 주로 쓰일 예정이다. 홍 부총리는 또 탄소세에 대해서도 “기후변화 대응, 소득 분배, 물가, 산업 경쟁력 등 미치는 영향이 다각적인 만큼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도입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탄소 중립 이행의 필수 요소인 원전은 언급도 없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87%를 차지하는 에너지 분야의 탄소 중립 추진 전략에서는 원전을 배제했다. 에너지 분야에서 탄소 배출을 없애려면 석탄·LNG(액화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데, 선진국들은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원전 이용을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취임 후 탄소 중립 선언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원전 활용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영국·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고수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로만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경쟁국들이 원전을 탄소 중립 실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건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며 “원전을 없애면서 탄소 중립을 하려면 전기료 폭등으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기업의 해외 탈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