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평가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선고를 앞두고, 삼성의 준법 경영활동에 대한 평가 논란이 여론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법원이 지정한 심리위원이 삼성준법감시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삼성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보도됐다”며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같은 갑론을박(甲論乙駁)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관련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준법감시위를 주요한 양형 이유로 삼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촉발됐다.
◇뜨거운 감자, 준법감시위원회 평가 논란
삼성준법감시위는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의 준법 감시 등을 위해 지난 2월 설치된 독립 위원회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삼성이 앞으로 정치 권력자 요구에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이 위원회는 삼성 각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준법 감시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지속 가능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했다. 최근 심리위원단이 결과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터졌다. 심리위원은 총 3명. 특검 측이 추천한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이재용 변호인 측이 추천한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의 삼성준법감시위에 대한 평가는 부정과 긍정으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핵심은 법원이 추천한 심리위원인,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의 평가다. 3명의 심리위원 중 그가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평가 보고서를 사전에 입수했다며 강 전 재판관이 삼성준법감시위 관련 총 18개 항목 중 14개 항목에 대해 부정 평가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 삼성 측이 참고 자료를 내자 긍정 평가가 더 많다는 보도가 뒤이었다.
본지가 최근 법원이 공개한 강 전 재판관의 평가 보고서를 살펴보니, 명확하게 긍정 또는 부정으로 판단하기 힘든 항목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준법감시위 지속성을 평가하는 대목에선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은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에 대해 “(준법감시위가) 법령에 근거를 두지 않은 임의 조직이므로 이들 계열사의 탈퇴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준법감시위 설명과 같이 계열사 탈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긍정 평가”, 또 다른 쪽에서는 “부정 평가”라며 해석이 엇갈린 것이다. 강 전 재판관은 “준법감시위 출범 뒤 삼성이 제도적으로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이전보다 어려워졌고, 조직 내부의 준법 의식도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한계점도 함께 지적했다.
◇삼성의 최고 권력 기구는 준법감시위?
준법감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법원뿐 아니라 삼성 안팎에서도 일고 있다. 재계에서는 준법감시위의 막강한 권한 등에 대해 “주주총회 등을 통해 선임된 사외이사도 아닌 준법감시위원들이 그룹 기밀 사항인 M&A(인수합병) 등에 대해 사전에 보고받는 등 초법적 권한을 휘두른다” “각 계열사별로 이미 준법감시제도가 마련돼 있는데 옥상옥(屋上屋) 제도다”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특히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직접 대국민 사과할 것을 권고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그대로 따르며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해 ‘삼성의 최고 권력 기구’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준법감시위는 최근 회의에서 주주 친화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것을 계열사에 권고했다. 또 공정경제3법, 노동조합법 개정 사항 취지를 실현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일감 몰아주기 대상에 새롭게 추가된 회사와의 거래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하게 감시할 것이라고도 했다. 준법감시위의 이같은 광범위한 활동에 대해, “삼성이 혹 떼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가 더 큰 혹을 붙인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며 “법원이 뇌물 사건의 양형 이유로 준법감시위라는 세상에 없는 특이한 제도를 왜 만들도록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